지난해 10월 화상으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베이징 특파원단
[특파원 칼럼] 최현준
베이징 특파원
지난 5월20일부터 중국에서 한국 포털 네이버 접속이 안 되고 있다. 접속 장애는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모르쇠’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평가하게 한다. ‘이게 제대로 된 국가냐’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베이징에 있는 주중 한국대사관의 대응 역시 실망스럽다. 한국대사관은 중국 정부의 ‘모르쇠’ 전략에 속수무책이다. “중국 쪽에서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초기 대답이 최근 “중국 쪽과 대화하고 있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사관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막혔지만, 교민 대부분이 브이피엔(VPN·가상사설망)을 쓰고 있어 실질적인 피해는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실과 맞지 않는 인식이다.
“한국대사가 나서야 할 때가 바로 이런 때 아닌가요.”
베이징에 사는 한 교민의 말이다. 지난달 초 윤석열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기사에 썼다며 중국 관영 <환구시보>에 정식 항의공문을 보내는 ‘결기’를 보였던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정작 교민 불편이 큰 네이버 접속 장애에는 조용한 것을 꼬집은 말이다. 30년 가까이 교수(서울대 외교학과)로 일해온 정 대사는 서울 충암고 동기동창인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중국대사에 임명됐다.
한국을 연구하는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최근 정 대사의 <환구시보> 항의공문 발송을 두고 ‘득보다 실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영향력이 크지 않고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환구시보>에 정색하고 대응한 것이 오히려 한국 외교의 급을 낮췄다는 것이다. “정 대사가 중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대놓고 이렇게 평가하는 이도 있다.
부임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보여야 할 곳에서는 안 보이고 애먼 데서 싸우는 모습만 보이는 건 그뿐이 아니다. 대사관 주요 간부가 대사와 손발을 제대로 맞춰보지도 못한 채 갈등을 빚다 자리를 옮겼고, 정 대사는 그 후임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외교부 공무원들 사이에 중국은 선호 지역이 아닌데, 정 대사 부임 뒤 더욱 기피하는 지역이 됐다고 한다. 취임 간담회 때 불거진 한국 특파원단과의 갈등도 진행형이다. 한달에 한번 하는 대사 브리핑은 자신의 즉석 답변이 왜곡돼 전달될 수 있다며 사전에 이메일로만 질문받고 현장 질문은 받지 않는 기형적인 형태를 이어가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여러 작은 갈등이 주중 한국대사관의 역량을 갉아먹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외교정책이 미국·일본 쪽으로 급격히 기울면서 한-중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은 최근 <문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중-한 관계가 좋지 않다. 더 나빠질 위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 원인과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엄포성 발언이 거슬리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과 대결할 핵심 분야로 반도체와 배터리를 지목했다. 추상적인 미-중 전략 경쟁이 한국의 핵심 산업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애먼 데서만 싸우는 중국대사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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