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인 지난 4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야외 도서관 ‘광화문 책마당’에 시민들이 북적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삶의 창] 이명석 | 문화비평가
소음과 분노가 도서관을 뒤흔들었다. “아니, 여기가 어딘데!” 쩌렁쩌렁 고함소리가 열람실을 울리자, 나와 몇사람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갔다. 주로 아이들이 이용하는 계단식 독서 자리의 꼭대기였다. 구석에 앉은 중년 남자를 장년 여자가 쥐잡듯 몰아치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여기는 도서관이에요!” 남자는 노트북을 보고 있었을 뿐이라며 항변했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새벽부터 와서 아무 데나 누워 있고, 컵라면을 내버리지 않나?” 그런데 호통의 내용을 들어보니, 그 남자의 소행만이 아니라 여자가 평소 보아온 온갖 악행들을 고발하는 것 같았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도서관 수천군데가 엉망이 되고 있어요.”
계단 아래에서 연극을 보듯 지켜보던 사람들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침묵의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괴성의 도서관을 만들어야 하나? 주변의 아이들은 겁이 나 자리를 피했고, 사서도 말리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남자가 황급히 짐을 싸서 도망치는 거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 책을 폈지만, 여자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방을 들고나오는데, 계단 위 그 자리에 그 여자가 정말 평온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길고양이가 낯선 고양이를 소리 질러 쫓아낸 뒤 자기 영역권을 되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떠올랐다. 맞아, 그분이구나. 언젠가 책 소개 방송을 준비하며 도서관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탁탁탁 내리쳤던 분이다. “여기 도서관이에요!” 아마도 노트북 자판 소리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침묵의 독서 공간’만이 소중하다는 도서관 원리주의자들은 요즘 심기가 편치 않을 것 같다. 도서관이 ‘공동체의 거실’ 역할을 맡으며 자연스레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는 곳도 있고, 노트북을 쓰라고 콘센트까지 갖춰둔 곳도 많다. 장난감 도서관을 겸하는 곳에선 아이들의 웃음이 번져 나오고, 다양한 수업이나 동호회 모임으로 인해 복도의 발걸음도 부산하다. 게다가 나는 이런 원리주의자들이 알면 당장 멱살을 잡힐 법한 일들을 해왔다.
지난해 서울도서관의 축제 활동가들을 위한 사전 강의를 맡았는데, ‘봉인해제’라는 팀이 특히 재미있었다. 평소 도서관에서 금지된 일을 시도하는 기획이었는데, 나는 가장 정적인 도서관에서 가장 동적으로 노는 법을 소개했다. 서가를 살인사건 현장처럼 꾸며놓고 퀴즈를 푸는 추리도서관, 금지된 책의 역사를 소개하며 감옥에서 책을 읽는 금서도서관,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캠핑도서관…. ‘사일런트 디스코’라며 헤드폰을 쓰고 춤을 즐기는 도서관들도 꽤 있다. 도서관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책과 함께하는 다양한 즐거움을 만들어보자는 시도다.
도서관은 어떻게 어디까지 변해야 하나? 사서와 방문자들의 소리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토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대한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지자체장과 의회가 도서관 예산을 삭감하고, 작은도서관 문을 닫고, 도서관의 자율적 움직임에 딴지를 걸고자 한다.
원리주의자보다 더 극단적인 구청장은 도서관을 입시와 취직을 위한 스터디카페로 바꾸려 하고, 이런 일에 항의하는 도서관장을 파면했다.
독서는 가장 조용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책 속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소음과 함성을 만난다. 거짓된 생각과 권위를 부수는 마음의 소란들은 밖으로 튀어나와 세상을 뒤엎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의 무서움을 안다. 심지어 수험서를 제외한 모든 책이 두려운 나머지 도서관을 부수려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