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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IPEF ‘신뢰가치사슬’의 규범화와 세가지 딜레마

등록 2023-05-30 18:20수정 2023-05-31 02:40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부터 7번째)이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부터 7번째)이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11년 미국이 개최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유무역을 외쳤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올해 아펙 주최국 미국이 통상장관회의 개최지로 디트로이트를 낙점한 순간, 미국 의도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5월26일 통상장관회의에서 자유무역의 최대 피해지를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으로 되살리겠노라 다짐한다. 이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신 워싱턴 컨센서스”를 외친다. 자유무역 구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27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 14개국 장관들은 4개 분야(무역·공급망·청정경제·공정경제) 중 공급망협정의 실질 타결을 선언했다. 공급망 위기 극복과 공급망 다변화·안정화, 공급망 관련 노동환경 개선 등을 위한 정부 간 협력과 공조를 약속하며, 위기대응 네트워크, 공급망위원회, 노사정 자문기구 구성에도 합의했다. 공급망협정은 글로벌 공급망 중 일부를 신뢰 가능한 동맹·우방 간에 재편하려는 신뢰가치사슬(TVC)의 국제규범화라는 의의를 지닌다. 한국은 신흥 국제규범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값진 외교 성과도 얻었다.

하지만 관련 공동보도 성명은 회복력, 효율, 생산성, 지속가능성, 투명성, 다양성, 안전, 공정, 포용성 등 말의 상찬으로 가득하다. 미국이 못박은 11월 아펙 정상회의 때 유의미한 타결을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딜레마를 풀어야 한다.

유연성 대 안정성. 공급망협정 협상 개시 6개월 만의 타결은 아이피이에프가 신속 추진을 위해 고안된 유연한 무역협정 모델이어서 가능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아이피이에프는 모든 챕터의 일괄타결이 아닌 분야별 참가와 타결이 가능하다(인도는 무역 분야에 불참). 또한 지연되기 일쑤인 의회 비준이 요구되는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이다. 대신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기에 규범의 안정성과 이행강제력이 의문시된다. 협상 와중에 인도네시아가 니켈원광 수출을 금지하고 미국이 국제규범에 반하는 반도체 가드레일 조항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휘둘러도 막을 방도가 없다.

포용성 대 통합성. 참여국의 절반 이상이 개발도상국인 아이피이에프가 추구하는 포용성은 높은 수준의 통합성과 상충한다. 아이피이에프가 반중연대라는 착각은 미국 의도를 참가국 의도로 등치시킨 오독일 뿐이다. 대중 의존도가 높은 여타 참가국은 반중연대를 원치 않는다. 공급망협정이 협상 6개월 만에 타결된 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해충돌이 그만큼 첨예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공급망협정과 정반대 이유로 무역협정은 먹구름이 잔뜩이다. 미국 재계는 개도국 주장을 반영한 ‘디지털무역’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뭐가 다르냐며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수준을 요구한다. 또 노동, 환경 관련 높은 통합 요구는 개도국에 ‘사다리 걷어차기’로 비친다. 내년 대선에 모든 시계를 맞춘 미국 정부가 강조하는 노동권에 참가국 노동권은 열외인 듯하다. 아이피이에프가 포용성과 통합성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면 세계 최초 공급망협정도 쓸모를 잃는다. 미국이 정한 11월 아펙에 맞춘 타결 선언은 요원하거나 공급망협정처럼 되기 십상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주요 7개국(G7) 회의 때 미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합류를 재차 요청한 속내다.

효율 대 회복력. 공급망 위기 대응에는 기업의 협조가 관건이나, 반도체법 등에서 미국 정부가 보인 과도한 영업기밀 요구 사례 등에 비춰보건대 이들이 정보 공유를 통한 공급망 회복력 제고에 나설지 의문시된다. 공급망협정이 칩4,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 등 유사한 협의체와 중복돼 기업 부담을 가중해서도 안 된다. 미국 재계는 아이피이에프 참가국의 규제장벽은 공급망 강화 노력을 약화하는데도 자국 정부는 의회 비준도 불필요하니 디지털 무역규범 제정을 등한시한다고 불만이다.

이상의 딜레마는 아이피이에프의 실제 목적함수가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피이에프가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지 않으려면 아직 갈 길이 험난하다. 그런데도 국내 정치에 포박된 미국은 지금 이를 위한 당근이 없어 채찍도 없다. 이에 이번 공급망협정이 실효적인 신뢰가치사슬 규범이 되는 동시에 대중관계도 잘 풀어내려면 한국, 일본과 같은 중견국 간 공조와 지혜가 요청된다. 한국의 진정한 외교 역량이 요청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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