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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규의 저널리즘책무실] 소통, 시민주 신문 한겨레의 숙명

등록 2023-05-29 17:56수정 2023-05-30 02:36

한겨레신문 사옥 로비에 있는 주주 명부 동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신문 사옥 로비에 있는 주주 명부 동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11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지난 22일 첫 회의를 열었다. 열린편집위원회는 <한겨레>가 생산하는 콘텐츠를 독자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시민의 의견을 뉴스룸국에 전달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기구다. 이날 회의에서 8명의 위원 중 한명인 심창식 <한겨레:온> 편집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

“한겨레가 최근 1면 알림을 통해 주주·독자·후원회원들에게 더 다가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일회성 행사들이더라. 상시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안 보인다.”

그러면서 가칭 ‘단소리 쓴소리’ 코너를 신설해보자고 제안했다. 한두줄짜리라도 좋으니 독자들의 의견을 상시적으로 접수하는 통로를 만들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것들을 모아 오피니언면에 싣자는 것이다. 독자나 후원회원들이 한겨레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뒷담화’만 하게 하지 말고 멍석을 깔아주자는 취지다. 한겨레가 독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만 해도 불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심 위원은 한겨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창간 주주독자다. 한겨레 창간 때 은행원이던 그는 수개월치 월급을 털어 주주로 참여했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한겨레를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스스로를 ‘한빠’라고 부른다. 지금은 한겨레 주주·독자·후원회원들의 온라인 뉴스 커뮤니티 <한겨레:온>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말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그는 한겨레가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과 극심한 불화를 빚던 2017년 5월 <한겨레:온>에 이렇게 썼다.

“한겨레 창간 주주들은 한겨레를 잉태한 주주로서 일종의 ‘어미’ 같은 심정을 갖고 있다. 잘나도 내 새끼요, 못나도 내 새끼다. 한겨레가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욕을 먹는다 해도 같이 욕할 수만은 없는 게 창간 주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심창식 칼럼, ‘한빠’가 ‘문빠’를 만났을 때)

사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웬만한 앙금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오해를 풀거나 접점을 찾기 위한 대화는 그다음 일이다. 한겨레와 독자 사이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겨레 주주독자들은 대체로 참여 욕구가 강하다. 한겨레가 잘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겨레가 독자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물론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독자와 소통하는 일이 예전보다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닫힌 성채’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독자 없는 언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독자·시민과의 소통은 모든 언론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언론인을 위한 교과서로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열번째 저널리즘 원칙으로 ‘시민의 역할’을 꼽는다. ‘집단 지성으로서의 뉴스’로 특징지을 수 있는 새로운 저널리즘을 위해 뉴스 제작 과정에 수용자를 초청하고, 뉴스에 대한 시민의 반응을 경청하고 대화를 촉진하라고 이 책은 권고한다.

한겨레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꼭 10년 전인 2013년 5월, 한겨레는 창간 25년을 맞아 ‘창간 정신의 진화’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한겨레가 처한 위기의 원인으로 짚었다. 확장성이 취약하다 보니 매체의 영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었다. ‘민주주의, 분단 극복, 민중 생존권’이라는 창간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나, 진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진화와 혁신의 열쇳말로는 독자·시민과의 ‘소통’을 꼽았다. 언론의 사명이라 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전체 그림’을 보여주는 일은 소통을 통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고 봤다. 그동안 한겨레가 사안의 전모를 보여주는 데 소홀하고 ‘부분적인 그림’을 제공해왔다는 반성이기도 했다. 열린편집위원회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한겨레의 ‘보도 규범’이라 할 취재보도준칙도 ‘시민과 독자 존중’에 한 챕터를 할애하고 있다. 준칙에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처럼 시민은 언론을 감시하며, 그러한 감시가 더 나은 언론을 만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민과 독자의 문제제기 및 비판에 귀 기울인다”고 규정돼 있다.

소통은 시민들의 참여로 탄생한 한겨레의 숙명이다. 때로는 거칠고 날이 선 목소리와 마주할 수도 있지만, 독자는 언제나 기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따지는 사람들이라는 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독자의 비판을 자본과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같은 차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10년 전 ‘창간 정신의 진화’ 보고서는 새로운 25년의 비전으로 ‘말 거는 한겨레’를 제시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더 필요한 태도는 독자와 시민의 제안과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곧 ‘말 듣는 한겨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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