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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갇힌 베트남 인권활동가 당딘박을 위하여

등록 2023-05-25 18:35수정 2023-05-26 02:41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베트남 변호사이자 인권활동가인 당딘박(Dang Dinh Bach)이 경찰에 연행되고 감금된 지 1년11개월이 지났다. 허가 없는 외국기금 사용 및 탈세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를 만난 때는 2019년 초, 전세계 인권변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한 해외 워크숍에서였다. 2010년 이전부터 베트남에 ‘공익변호사’ ‘공익법운동’ 개념을 도입하고 환경보호 등 지속 가능한 개발과 관련한 구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데올로기와 인권을 주제로 논의가 오갈 때, 자국에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를 언급하며 이데올로기에 대한 단순한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그와 공감대를 형성했던 기억이 있다.

유엔인권기구인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에 의해 확인된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사례는 형사사법절차상 인권침해의 백화점이다. 연행 때 영장이나 체포 사유 제시는 없었다. 반년이 넘는 공판 전 구금기간 동안 변호사 접견을 포함해 외부와의 소통은 전면 금지됐다. 2022년 변호사는 공판 직전에야 두번 그를 접견할 수 있었다. 검찰의 증거는 변호사에게 제공되지 않았고 변호사는 증인신문을 할 수 없었다. 가족조차 재판을 방청할 수 없었고, 당사자인 박의 진술권도 보장되지 않았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사가 구형한 3년보다 중한 5년형이 선고됐지만 국영언론은 박이 자백했다는 가짜뉴스를 보도했다. 항소심 상황도 다르지 않았고 1심 선고형이 유지됐다.

당국은 왜 그를 가두려는 걸까. 미국 환경단체들과의 공동 활동,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기금 수령, 대규모 수력발전 사업에서의 강제이주민들 문제 제기 접수 등 활동에 정부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유럽연합-베트남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노동권, 토지권, 환경권 보장 등을 점검할 수 있는 독립된 시민사회 자문위원회 구성을 주도해온 박이 표적이 됐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결국 국제 연대를 통한 인권활동에 불편함을 느낀 베트남 정부가 탈세 등을 핑계로 해당 인권운동가를 탄압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지난 3월31일 유엔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에서 박 사건과 관련한 견해를 채택했다. 박의 구금은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고, 공정한 재판에 관한 국제 규범에 반하는 것이며,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면회도 전면 금지하는 등 죄를 인정한 이들과 차별하는 것으로 자의적 구금임을 확인했다. 실무그룹은 베트남 정부에 박을 조건 없이 즉각 석방하고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의 자의적 구금 상황에 대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도 촉구했다. 베트남 정부는 심의 과정에서 답변을 거부했다.

그냥 민주주의가 덜 발전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뿐인가. 한국 사회는 또 어떤가. 어떤 사회든 권력 입장에서 인권은 불편하고 이를 회피하거나 억압하기 쉽다. 질적·양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인권옹호자들은 어디서든 권력의 억압에 쉽게 노출된다.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때 형사처벌하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역사적인 탄핵 촛불, 힘을 잃은 일부 정치세력의 숨통을 터줬던 태극기부대의 집회는 모두 잊었나.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여러 집요한 조사 등을 통해 정부 비판을 원천봉쇄하려는 전면전의 양상도 보인다. 전 정부 시절 북한인권·탈북자 단체들에 대한 통일부의 사무검사가 인권침해이고 정치적 탄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시민사회와 인권옹호자들을 바라보는 일부의 반인권성과 몰역사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안타깝게도 탄압받고 있는 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박은 이미 고립된 구금과 두차례의 단식투쟁으로 극도로 쇠약해져 있는데 다음달 세번째 단식에 돌입한다고 한다. 하루 단식을 책임지기로 했다. 국제 인권단체와 나라별 인권·환경단체 활동가 등 여럿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미미한 움직임이긴 하지만 누군가 지켜보고 있음을, 인권을 억압하는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다. 베트남 정부는 모든 불법과 반인권을 멈추고 박을 석방해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피구금자, 피억압자인 인권활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정부가 비겁한 잔인함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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