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뚝섬 일대의 대형 공원 서울숲. ‘뜨는 동네’ 성수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유청오 조경사진가
배정한 |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공원엔 걸어서 가야 제맛이지만, 가끔 작정하고 집에서 먼 공원에 가면 집밥만 먹다 외식하는 기분이 든다. 내 공원 외식의 단골 메뉴 중 하나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공원이다. 한해 방문자가 무려 750만명, 늘 붐비고 활력 넘친다. 문화예술공원, 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 등 다른 성격의 여러 공간을 엮은 35만평 규모 공원 복합체다. 게다가 한강과 바로 맞닿아 있다. 살갗으로 날씨의 맛을 감각하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사람 구경 실컷 하면 흐물흐물해진 마음에 근육이 자란다.
이름에 ‘숲’이 붙어있다고 호젓한 숲길 해찰이나 고즈넉한 나무 그늘 밑 사색만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른 새벽을 달리는 조깅족, 소박한 브런치 피크닉을 즐기는 동네 친구들, 평일 오후 나른한 데이트에 나선 연인들, 고요한 연못 수면을 깨뜨리며 첨벙대는 개구쟁이들, 셔츠를 걷어붙이고 퇴근길 텃밭 가꾸기에 심취한 도시농부들, 반려견과 함께 공원 구석구석을 누비는 심야 산책자들로 서울숲은 온종일 대만원이다. 조성 과정과 프로그램 운영에 시민들이 깊숙이 참여해온 공원이라 여러 세대의 자원봉사자들을 늘 만날 수 있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주간에는 그 낭만의 기세가 멀리 응봉산 자락까지 퍼져나간다. 눅진한 장마철이나 살을 에는 혹한기를 빼면 서울숲은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북적댄다. 서울숲만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포용하는 공원,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환경의 가치를 내건 도시 마케팅과 ‘녹색 정치’의 테스트베드로 조성된 서울숲의 나이는 채 스무살이 안 되지만, 서울숲과 그 일대 뚝섬에는 지층보다 두터운 여러 켜의 시간과 기억이 쌓여있다. 한양의 동쪽 경계부, 즉 성저십리 끝자락이었던 뚝섬 근방은 동교, 뚝도, 살곶이벌 등 여러 지명으로 불렸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고 그 배후에 아차산이 위치하는 이곳은 조선 왕실의 사냥터, 군사훈련장, 목마장, 충청도와 강원도의 수운 종착지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소나 말 등을 키우는 목장과 마장의 정체성이 강했지만 근교 농업도 활발했다. 한강 범람으로 상습 수해를 겪던 뚝섬 강변에 일제 총독부는 제방을 쌓아 홍수 피해를 막고 살곶이벌과 뚝섬을 농경지로 활용했다. 경성이 팽창하던 1930년대에는 사설 교외 철도가 운영되면서 뚝섬에 수영장과 부대시설을 갖춘 유원지가 조성됐다. 당시 신문은 넓은 들판, 한강 모래사장, 제방 포플러 숲이 어우러진 뚝섬 풍경을 목가적 전원의 진수라고 묘사한다. 뚝섬은 경성에서 궤도차를 타고 휴일 나들이 갈 수 있는 매력적인 유원지 상품이었던 셈이다.
서울숲 방문자는 누구나 이 군마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 테다. 이 땅에 자리했던 경마장의 기억을 소환한다. 사진 배정한
해방 이후 뚝섬유원지는 자유와 여흥, 낭만과 쾌락을 만끽하는 행락지로 전성기를 누린다. 조정래는 소설 <한강>에서 1960년대 뚝섬의 아름다운 백사장을 서울 최고의 인기 피서지로 꼽는다. 1954년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최초의 경마장이 들어섰고, 1968년에는 경마장 안에 골프장도 생겼다. 1980년대 중반 한강에서 수영이 금지되기 전까지 뚝섬유원지는 지금의 서울숲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형 공원 역할을 했다. 이 땅에는 왕실의 사냥터, 행락객의 유원지, 시민의 공원으로 이어지는 여가 문화의 디엔에이(DNA)가 배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
1990년대에는 서울시 청사를 이곳으로 옮기는 구상이 있었고 국제 첨단업무단지를 짓는 청사진도 발표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위해 돔구장을 짓는 계획이 세워졌지만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여파로 무산됐다.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다면 상암동 대신 서울숲 자리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것이다. 엘지트윈스 야구단 돔구장의 유력 후보지이기도 했다. 2005년, 이런 거창한 구상들을 뒤로하고 살곶이벌과 뚝섬유원지의 맥을 잇는 대형 공원, 서웊숲이 들어섰다.
시민 참여형 공원 경영의 막을 연 서울숲은 성수동 일대를 빠르게 바꿔나갔다. 사진 배정한
시민 참여형 공원 경영의 막을 연 서울숲은 성수동 일대를 빠르게 바꿔나가며 도시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서울숲에 어깨를 맞대고 들어섰다. 수인분당선이 개통되면서 공원 전용 지하철역이 생겼다. 강이나 숲을 뜻하는 외국어 이름을 단 초고층 아파트들이 연이어 자리를 틀며 공원의 사유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낙후한 붉은 벽돌 연립주택들만 빼곡했던 성수동1가가 ‘뜨는 동네’로 급변한 것도 서울숲의 영향이다. 아무도 찾지 않던 성수이로와 연무장길 인근 경공업 지역이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며 부상한 이례적 현상도 서울숲의 잠재력과 무관하지 않다. 공원과 도시가 긴밀한 함수 관계를 맺고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