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팬들이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우승을 축하하는 밤샘 파티를 벌이고 있다. 나폴리/EPA 연합뉴스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지난 4월30일 일요일, 이탈리아 나폴리 전 지역이 매캐한 붉은색 연기와 푸른색(나폴리의 상징색이다) 연기로 가득 찼다. 전쟁이라도 난 듯한 풍경이었지만, 시위가 벌어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나폴리 축구팀 SSC나폴리의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 우승 확정이 유력시되는 경기를 앞두고, 축구팬들이 폭죽과 연막탄을 터트려댄 것이었다. 많은 축구팬이 나폴리의 우승 확정 파티를 즐기기 위해 몰려들면서, 도시는 광란의 분위기였다.
유럽 축구팬들이 극성맞기로 유명하다지만, 나폴리의 축구 사랑은 더 특별한 데가 있다. 우승이 확실시되는 이번 시즌, 나폴리 전역의 주택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건 푸른 깃발과 푸른 천으로 넘실대고 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축구에 진심인 걸까. 이탈리아가 통합된 지 2백년이 채 안 됐고, 그 이전에는 각각 독립된 도시국가 체제로 수백 년을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나라가 축구 국가대항전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듯이, 이들은 국내리그 축구를 통해 자신들의 뿌리인 지역 정체성을 확인했다.
나폴리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사랑 또한 대단하다. 2020년 11월25일, SSC나폴리에서 활약하던 마라도나의 부고가 전해지자 구단은 마라도나를 기리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변경했다. 여기에도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산업이 발달하고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농업 중심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남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나폴리를 ‘이탈리아의 하수구’라며 멸시하기도 한다. 리그 강등 만 피하면 다행이던 하위권 팀 SSC나폴리는 마라도나 영입 뒤 두차례나 세리에A에서 우승하며 북부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 나폴리 사람들의 자부심 그 자체가 된 마라도나의 얼굴은 지금도 나폴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세리에A 마지막 우승 뒤 3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나폴리는 대개 중위권에 머물렀다. 나폴리 사람들은 SSC나폴리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특히 최강의 축구클럽들이 겨루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보다도 세리에A 우승인 ‘스쿠데토’를 더 간절히 바랐다. 17-18시즌과 18-19시즌 북부의 유벤투스에 1위 자리를 넘겨주고 두번 연속 2위를 했으니, 눈앞에서 놓친 우승이 얼마나 간절했을 것인가.
하지만 약팀을 만나 수월하게 우승을 확정지을 것 같던 4월30일 경기에서 경기 종료 10분 전 상대 팀 살레르니타나의 동점골이 터졌고, 온 도시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홈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파티를 벌일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김칫국을 마셨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물론 그다음 경기인 5월4일 경기에서 승리하며 SSC나폴리는 세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거대한 폭죽 쇼와 함께 축제가 벌어졌고, 33년 전 청년 때 우승의 기쁨을 누렸던 중년 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흔히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한다. 강팀이 언제나 이기는 것도 아니고, 포기하지 않는 투지로 역전을 일궈내기도 한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는 감동,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삶의 교훈을 주기도 한다. 언제나 우리의 인생은 기대보다 실망스럽고, 그래서 한번쯤은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비루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가끔은 최고가 돼봤으면 하고 바란다.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긍지의 경험, 사랑하는 이로부터 받는 ‘네가 최고’라는 찬사가 필요하다. 나폴리 시민들의 축구와 마라도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마음속에 이러한 자긍심을 심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