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이명석 | 문화비평가
친구의 아이가 좌절과 자책에 빠졌다고 한다. 좌절은 중학교 입학 뒤 처음 본 중간고사를 망쳤기 때문이다. 자책은 시험 전날 친구들과 모여 공부하자며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실행했는데, 그것이 시험을 망친 결정적 요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풀죽은 아이의 머리 위에 반짝이는 트로피를 본다. 그는 ‘친구들과 시험공부 한다고 모여 함께 망치기’라는 인생의 중요한 한 미션을 완수했다.
“너희는 그랬던 적 없어?” 주변에 물어보니 고백이 이어졌다. 특히 평소에 공부와 담쌓은, 소위 자기주도형 학습이 안 되는 친구들은 예외가 없었다. 의도야 좋다. 혼자 공부하면 금세 지친다. 야구부 합숙처럼 모여 서로를 채찍질하자. 모르는 건 서로 가르쳐 주고 예상문제를 퀴즈처럼 맞춰 보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갑자기 뇌가 잘 돌아간다. 공부 자체보다는 모임을 어떻게 준비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생일선물로 받은 비싼 필기구를 꺼내고 오답노트와 형광펜 세트도 사러 간다. 밤샘을 대비해 잠옷과 야식 메뉴를 고민하면 어느새 파자마 파티 분위기가 된다. 이런 흥분 상태의 청소년들이 모이니 학습효과는 뻔하다.
친구의 아이는 이 정도까지 막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상 못한 난관에 좌충우돌해야 했다. 처음엔 스터디카페에 갔는데 중학생은 받아주지 않았단다. 스터디룸을 빌리려고 엄마에게 부탁했는데 가격도 비싸고 중학생들은 시끄럽다며 꺼린다고 해서 포기했다. 결국 도서관에 가기로 했는데 몇번 버스를 타고 갈지, 저녁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거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나 때문에 시험 망쳐서 애들이 나 싫어할 것 같아.” 모임을 주도한 아이는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다.
나는 친구에게 아이를 칭찬해주라고 했다. “10년 뒤엔 시험에 나온 문제가 뭔지는 다 잊어버려. 하지만 공부모임은 생생하게 떠오를걸?” 단지 나중에 깔깔거릴 실수담을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아이는 어떤 이벤트를 기획, 실행, 반성하는 완결된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시험지 안의 가짜 문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의 진짜 문제들을 만났다.
중학생은 왜 스터디카페에서 받아주지 않지?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고 관습법을 고민한다. 낯선 도서관을 찾아가며 지리적 감각을 키운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공부 조건을 찾아내려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낭비했다며 손실을 계산한다. 좋은 의도가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을 때의 좌절을 경험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걱정하면서 감정지능을 성장시킨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생활 속 자질구레한 문제엔 신경을 끊고 오직 책 속의 문제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머니가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운전하고 학원 선생님과 상담하고 떡을 썰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너는 글을 쓰거라’ 그 말만 따르면 된다. 그렇게 구차한 삶을 멀리하고 정량화된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한 사람들이 법과 정치를 다루며 사회를 움직인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지방도시의 한 학부모가 물었다. 고등학생 딸이 아이돌콘서트를 본다며 서울에서 1박을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칭찬해주세요.” “네?” “티케팅에 성공했다는 거잖아요.” 학부모의 웃음 위로 의견을 전했다. “1박2일 스케줄과 예산을 꼼꼼히 짜서 가족들 앞에서 브리핑하라고 하세요. 마치 기업체에서 하듯이. 그다음에 결정하세요.”
인생은 투트랙의 게임이다. 선행학습과 일타강사를 통해 성장하는 게임도 있다. 혼자 기차를 타고 친척 집에 가고, 토끼 탈을 쓰고 학교 축제에서 일일카페를 하고, 편의점 알바비로 밤도깨비 해외여행을 가면서 성장하는 게임도 있다. 전자는 학습, 후자는 놀이? 아니다. 후자가 훨씬 중요한 학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