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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디지털 기술 시대의 ‘분배 정의’란

등록 2023-05-07 20:11수정 2023-05-08 02:38

첨단 기술 기업들의 개발 경쟁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통제권 너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학계와 산업계 인사들이 챗지피티-4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개발을 잠시 중단하고 안전하고 투명한 인공지능을 위한 기술과 대책을 논의하고 마련하자고 요청하는 공개편지를 발표했다. 생명의 미래 연구소 제공
첨단 기술 기업들의 개발 경쟁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통제권 너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학계와 산업계 인사들이 챗지피티-4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개발을 잠시 중단하고 안전하고 투명한 인공지능을 위한 기술과 대책을 논의하고 마련하자고 요청하는 공개편지를 발표했다. 생명의 미래 연구소 제공

[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떻게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는가에 관해선 때론 이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 기술은 명백히 발전하는데 그 변화를 정확히 알아보지 못하는 게다. 심지어 디지털 분야 선구자들조차 그렇다.

한 예로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인공지능(AI)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제프리 힌턴 박사가 10년 동안 일해 오던 구글을 떠났다. 토론토 대학 교수인 힌턴 박사는 전세계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4명의 학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힌턴 교수가 개발한 딥러닝 기술은 요즘 화제가 된 대화형 인공지능의 기반으로 여겨진다.

이런 힌턴 교수가 구글을 떠나며,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관련해 잘못된 예측을 했다고 고백했다. 로봇이 사람보다 똑똑해질 것이라는 소수의 예측이 실현되려면 앞으로 30~5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5년만 돌아봐도 인공지능은 너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학자나 전문가조차도 자신들이 바꾸고 있는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일까? 당연히 이들이 무지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기존 지식에 얽매여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진화하고 실현될지 그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두고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 혹은 ‘전문가의 저주’(the curse of expertise)라고 부른다.

현재 시점에서 이런 ‘지식의 저주’가 가장 강력히 드리운 분야가 디지털 기술인 듯하다. 힌턴 교수뿐만 아니라 지난 3월 비영리단체인 ‘생명의 미래 연구소’(Future of Life Institute)가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주요 디지털 기업인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서명을 받아 6개월간 인공지능 개발을 중단하자는 성명을 낸 것은 자신들이 만든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런 디지털 기술이 만드는 변화가 당혹스러운 건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전공인 정치철학 분야에서도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매우 중대하다.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분야 중 하나가 ‘권리와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다루는 ‘분배 정의’(distributive justice)다. 디지털 기술에는 아날로그 기술보다 훨씬 더 양극화된 분배를 하는 속성이 내재해 있는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는 그 어떤 기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가속도가 붙고 있다.

반도체기업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는 1965년, 앞으로 디지털 연산능력이 1년마다 2배로 증가하리라고 예측하고, 1975년엔 2년마다 2배로 수정했다. 그런데 지난 2월 구글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대화형 인공지능 ‘바드’를 소개하는 가운데 무어의 법칙에서 주기가 6개월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술이 빨리 발전한다는 것은 그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는 사람들이 점점 소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분배도 소수에게 몰리게 된다.

더하여 플랫폼 형식으로 상업화되는 디지털 기술은, 많은 이용자가 몰릴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각 분야에서 독과점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검색 분야의 구글, 소셜네트워크 분야의 페이스북은 국경을 초월한 독과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구조에선 당연히 소수의 플랫폼(정확히는 이 플랫폼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소수)에게 분배가 집중된다.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은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일상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앱들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우리가 정보를 검색할 때마다, 에스엔에스(SNS)에 접속할 때마다, 웹으로 쇼핑할 때마다 인공지능은 열심히 작동하고, 열심히 작동하는 만큼 분배의 양극화도 이뤄진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세계의 부를 소수에게 몰아주고 있는 디지털 기술 시대에 적합한 분배 정의는 어떤 것일까? 우리 인문학은, 사회과학은 이런 거대한 변화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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