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전은지 |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종종 ‘여성 과학자의 삶’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남성 아닌 여성인 과학자가 경험하는 삶이라…. 곰곰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과학자로 꽤 오랜 시간 미국, 독일, 영국을 돌아다니면서 박사과정으로, 연구원으로, 교수로 살았다. 그 모든 곳에서 나는 소수였다. 성별로도 소수였지만, 국적으로도, 인종으로도 그랬다. 그 나라 언어가 모국어가 아닌 점까지도.
그래서였을까. 나 자신을 여성 소수자가 아닌 그냥 소수자로 인식했다. 소수자로 사는 삶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어디 가나 눈에 띄는 존재였겠지만, 주변에는 나를 남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나는 다른 연구원들과 비슷하게 연구하고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들 중 누구도 내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시절 미국 항공우주국(NASA) 흑인 여성 과학자의 삶을 다룬 영화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계산(연구)은 하지만 전체적인 데이터는 보지 못하고, 중요한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는 등 연구에서 차별당했다. 따로 떨어져 있는 흑인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야 했으며, 백인 남성들을 위해 준비된 연구실 커피포트를 이용할 수 없었다. 물론 극 중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은 자신의 노력과 몇몇 조력자의 도움으로 난관을 이겨내고 각자 원하는 성취를 하게 된다.
이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고작 60년 전에 이런 차별이 있었다니…. 믿기 어려웠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비교적 안온한 동양인 여성 과학자의 유럽에서의 삶은 누구 덕분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를 본 난 다음날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영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여성이고 동양인인 네가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별문제가 없이 연구하고 있다는 건, 그동안 많은 사람이 엄청나게 싸운 결과 아니겠어? 우리가 얻은 그 어떤 좋은 것도 공짜는 없다고 봐야겠지. 너는 어때? 여기서 차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니?”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외국에 살면서도 이런 종류의 질문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차별당한 경험이 있느냐 묻는다면, 있었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손에 꼽을 만큼 드문 경험이지만 차별당했다고 느꼈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차별인지 아닌지 애매했다. ‘차별 같은데, 정말 그런 건가? 내가 과민한 건 아닌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날에는 새벽까지 연구실에 남아 연구에 매달렸다. 차별당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고 뜨는 해를 바라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그때 그 애매한 기분이 들었을 때 연구실에서 혼자 밤을 지새울 일이 아니라, 가서 확인했어야 한다고. “지금 이거 차별인가요?”라고 묻는다고 바로 인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질문 하나가 누군가를 변화시킬지 모를 일 아니겠는가.
10년 넘는 긴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제는 국적과 인종, 언어에서 다수에 속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따른 안도감이 없지 않지만, 가끔 외국에서 소수자로서의 삶을 생각한다. 생각은 ‘혹시 나도 모르는 새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는 건 아닐까’로 이어진다. 독일에서와는 또 다른 서늘함이 가슴을 지난다.
인종으로, 국적으로, 성별로, 나이로 사회는 어떻게든 나뉠 수 있기에 소수자는 늘 존재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 모두 어떤 항목에서는 소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애매하다 할지라도 차별이라고 느끼거나 혹은 차별을 목격했다면,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성찰도 당연히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이 겹겹이 만날 때, 차별 없는 세상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