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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6411의 목소리] ‘아이들 밥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긍심과 보람

등록 2023-04-26 19:00수정 2023-04-27 16:14

나도 배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김치전이 반찬으로 나가던 날이라 아침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대형 전판 앞에서 꼬박 2시간 반 동안 전을 부쳤다. 그때는 시간 안에 음식을 만들어내야 해 정신이 없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일과가 끝난 뒤 샤워하면서 배에 화상 물집이 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 화상 흉터를 나는 “열심히 일한 훈장”이라고 말한다.
학교비정규직노조와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로 이루어진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 소속 노조원 등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시청역 인근에서 손팻말을 들고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 해소와 급식실 폐암 종합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학교비정규직노조와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로 이루어진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 소속 노조원 등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시청역 인근에서 손팻말을 들고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 해소와 급식실 폐암 종합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경희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장

매일 아침 7시30분쯤 출근한다.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30분가량 일찍 출근해 준비해야 그날 일정에 차질이 없다.

급식실에 들어서면 전날 잔반통이 비워졌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조리실과 세척실, 전처리실 창문을 열고 재빠르게 위생복으로 갈아입는다. 전날 퇴근하며 말려둔 행주와 속 장갑은 소쿠리에 담아 뒤에 출근하는 분들이 바로 쓸 수 있게 준비해놓고 가스 밸브를 열고 환풍기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조리실 위생을 위해 조리실 출입구와 구역이 나뉘는 경계 지점들에 발판 소독대에 소독액을 용량에 맞게 희석해 부어둔다. 개수대마다, 국을 끓일 솥마다 물을 받고, 검수에 사용할 소쿠리와 칼, 가위, 위생장갑 등을 준비하다 보면 한분 두분씩 출근해 각자 맡은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식품 창고에서 20㎏ 쌀 포대를 내어오고, 18ℓ 식용유 두세통을 튀김 솥에 붓고 재료가 들어오는 즉시 작업할 수 있도록 한다. 급식실 문을 열고 출근하는 순간부터 이렇듯 빠르게 움직이며 준비해야 제시간에 학생들에게 배식할 수 있다. 아마도 전국 1만5천여개 학교 급식실의 공통적인 아침 풍경일 것이다.

학교급식 노동자로 일한 지 올해로 17년째다. 세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을 키우며 다닐 수 있는 직장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학교급식 조리실무원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주방에서 밥하는 아줌마 정도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밥을 책임진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그러나 자긍심으로 버텨온 세월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어깨, 손가락, 팔꿈치, 무릎, 허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몸이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아직 뒷바라지해야 할 고등학생 막내가 있고, 매달 책임져야 하는 생활비가 있다.

사실, 나 정도면 다행이다. 수많은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는 세척제와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 초미세 분진)으로 인해 폐암에 걸리기도 한다.

내가 사는 대구에서는 대구교육청과 노동조합이 협의해 2022년 7월~2023년 2월 사이 5년 이상 근무하거나 55세 이상 1년 이상 근무한 학교급식노동자를 대상으로 저선량 폐 시티(CT)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폐결절 이상 소견자 790명, 폐암 의심자 17명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들 중 4명은 폐암으로 확진돼 수술받고 현재 항암치료와 요양치료를 받고 있다.

흔히 학교급식은 여성 건설노동자에 비유되곤 한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말이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600~700명 끼니를 위해 미끄러운 바닥을 종종걸음치며 하루 수백개 식판과 식자재를 옮기고 조리해야 하며 뜨거운 기름과 조리대를 다뤄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지 모른다.

나도 배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김치전이 반찬으로 나가던 날이라 아침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대형 전판 앞에서 꼬박 2시간 반 동안 전을 부쳤다. 그때는 시간 안에 음식을 만들어내야 해 정신이 없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일과가 끝난 뒤 샤워하면서 배에 화상 물집이 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 화상 흉터를 나는 “열심히 일한 훈장”이라고 말한다.

현재 폐암으로 투병 중인 노동자 두명은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교육청 관계자들은 그 어떤 행정적 지원을 하기는커녕 학교 현장 확인이라도 할라치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오랜 급식 노동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 또한 당사자가 증명해야 한다. 당연히 법률대리인을 선임할 수밖에 없고 법률비용 또한 부담해야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많다.

더는 학교에서 아이들 밥하다가 아픈 노동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리원 1인당 식수담당 인원을 줄여 초단시간 고강도 노동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학교급식실 환기시설 개선공사도 해야 한다. 폐암 수술한 학교급식 노동자가 예전의 환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이들 밥하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 점심때 줄 서서 식당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엄마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더 달라며 식판을 내밀 때, 더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한번 내 일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 학교급식 노동자 대부분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잘하고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아이들 먹거리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하게 정년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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