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터프츠대 연구자들은 배양한 지방세포(adipocytes)에 해초 유래 고분자를 더해 지방세포 덩어리(aggregated fat cells), 즉 배양비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대량 배양에 성공하면 기존 식물 기반 고기에 더해 풍미를 훨씬 좋게 만들거나(오른쪽 위) 가공식품의 원료로 쓸 수 있을 것이다(오른쪽 아래). 이라이프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22일은 53번째 ‘지구의 날’이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날을 만든 게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또는 점점 더 지구를 힘들게 하는 우리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서일까. 물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10분 소등, 플로깅 활동(산책하며 쓰레기 줍기) 등 나름 뜻깊은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한국채식연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후변화, 기후위기 시대에 채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채식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전에는 동물복지 같은 윤리의 관점에서 채식 필요성을 호소했지만, 지금은 지구를 구하자는 데서 더 큰 명분을 찾고 있다.
실제 육식은 에너지 낭비가 큰 식생활로, 콩과 옥수수 같은 곡물이 가축을 거쳐 고기로 바뀌면 칼로리가 10분의 1 수준이 된다. 세계 인구가 느는데다 육식 비율까지 높아지고 있어 방목과 사료작물 재배를 위한 숲 파괴가 심각하다. 가축 사육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도 덤이라고 하기엔 너무 엄청나다.
못 할 수는 있어도 안 하기는 어렵다고, 구매력 있는 사람들이 지구를 위해 육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해결책은 대체육인데 아직은 기대에 못 미친다. 식물과 버섯 등으로 만든 대체육이 진짜 고기 맛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식물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은 적이 있는데 좀 질리는 맛이라 다시는 안 사 먹었다. 최근엔 가축 세포를 키워 만드는 배양육 연구가 한창이지만 갈 길이 멀다.
고기 맛을 좌우하는 3대 요소는 풍미와 육질, 육즙이다. 특히 풍미는 고기의 정체성, 즉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를 알 수 있는 핵심 요소다. 고기에 풍미를 부여하는 분자는 수천가지에 이르고 대부분 고기를 요리할 때 만들어진다. 즉 살(근육)을 이루는 단백질과 당류, 비계를 이루는 지질이 화학반응을 통해 분해되고 변환된다. 특히 지질의 기여가 크다. 마블링이 좋은 등심이 더 맛있는 이유다.
최근 학술지 <이라이프>에는 돼지의 지방세포를 키워 배양 비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터프츠대 조직공학자원센터 연구자들은 지방세포를 2차원으로, 즉 용기의 벽면을 따라 증식하게 배양했다. 혈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산소와 영양분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실제 동물의 몸처럼 3차원으로 배양할 수 없다. 연구자들은 2차원 막으로 키운 지방세포를 긁어모은 뒤 해초류에서 추출한 고분자인 알긴산나트륨과 섞어 비계를 만들었다. 배양 비계는 지방산 조성이나 물성이 실제 돼지비계와 비슷했다. 연구자들은 기존 식물 기반 고기에 배양 비계를 섞어 식감뿐 아니라 풍미도 실제 고기와 비슷한 하이브리드 대체육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2차원으로 배양한 세포 자체를 가공식품의 원료로도 쓸 수 있다.
지속가능성이 있으려면 대중에게 절제를 기대하는 대신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의 날을 맞아 이번 연구 결과가 더 눈길을 끄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