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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절대 일본을 앞서지 마라…대통령께 알려드리는 ‘외교 비책’

등록 2023-04-24 19:01수정 2023-04-25 11:37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길윤형 | 국제부장

이제 곧 ‘신냉전’ 시대 대한민국의 침로를 정하게 될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만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으르렁대는 중·러와 제 잇속 차리기 바쁜 미국 사이에서 대한민국 전체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윤석열 대통령만 비판하면 그만인 ‘한가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뭔가 도움이 될 말이 있을까 해 망설이다 글을 쓴다.

냉정히 말해 윤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외교 노선이 다 잘못됐다 보진 않는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 파국’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은 사실상 요원해졌고,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간의 처절한 전략 경쟁으로 세계는 거친 진영 대결의 시대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탈냉전 이후 한국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미-중 ‘균형 외교’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중이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덩치 또한 세계 10등 정도로 커져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대만 위기 등 주요 현안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감당해야 할 일은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주도한 대일 ‘굴욕외교’나 지난 19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 ‘설화’ 등을 볼 때 걱정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현재 정부 생각과 전혀 다른 얘기를 길게 해봐야 피차 피곤할 뿐이니 아마도 수용 가능할 간단하고 유용한 팁을 하나 알려드리려 한다.

한국과 비슷한 외교·안보적 고민을 안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을 주시하시라. 그러면서 ‘절대’ 일본보다 앞서나가려 하지 말고 때로는 반걸음, 때로는 두어걸음 뒤처져 걷기를 당부드린다. 이렇게만 하면 미국에 크게 욕먹을 일도 없고, 중·러와 피곤하게 입씨름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도 피할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지난 <로이터> 인터뷰를 보자. 윤 대통령은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 등의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기자들은 고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질문 기회가 생기면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런 질문엔 100% 앵무새처럼 “가정에 기초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묻지도 않은 상황을 스스로 가정하며, 아슬아슬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절대 피해야 한다. 26일 한-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난처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제발 기계적으로 답해달라!

<로이터> 인터뷰를 읽고 너무 기가 막혀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영상을 돌려봤다. 올해 일본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았다며 온갖 뻔지르르한 얘길 하면서도 절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러자 질문이 나왔다. <엔에이치케이>(NHK) 기자였다.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무기 지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우크라이나를 여러 모양으로 지원하려 합니다.”(안 한다는 뜻)

그리고 중국.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처럼 대만 문제가 국제 문제라고 말했는데, 이는 한국이 ‘하나의 중국’을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중국에 불편한 얘기를 하려면, 그 앞에 반드시 “‘하나의 중국’ 정책은 변함없지만…”이라고 덧붙여야 한다. 기시다 총리뿐 아니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땐 그렇게 한 뒤 싫은 얘기를 쏟아낸다.

나아가 미국에 대만 문제는 전후 70여년 동안 이어져온 패권 유지와 관련된 문제이고, 일본 역시 대만에서 전쟁이 나면 자신들도 말려들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미 혹은 한·미·일의 틀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할 순 있겠으나 윤 대통령이 혼자, 그것도 매우 거친 방식으로 말을 하면 상대의 보복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국 외교’는 예측이 어렵다. 혼자 열심히 죽창 들고 진격하다 뒤를 돌아봤을 때 미·중 정상이 ‘썩소’를 지으며 악수하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하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기로 결심을 굳히셨으니 일본이 해온 것을 잘 보고, 딱 그 절반만 하시라. 미국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일을 저지르면, 뒷감당은 국민 몫이 된다. 너무 걱정돼 드리는 말씀이다. 제발 당부드린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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