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실패라고 하는 것들 속에 있는 무수한 진실들에 눈 뜰 수 있었다. 내 안은 여리고 작은 소리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철저히 혼자 버려진 것 같았던 경험들은 비슷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혼란스러워하던 동료들에게 소통의 다리를 놔주도록 했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이를 돕는 우정의 확산을 경험했고, 세상과 다시 한번 연결될 수 있었다.
박목우 | 정신장애 동료상담가
나는 올해 48살 정신장애인 여성이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던 때가 있었다. 빗소리도, 설거지할 때 물소리도,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모두 나를 공격하는 소리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사회생활 스트레스와 겹쳐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서른 즈음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고 심각한 조현병을 앓았다. 200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렇게 5년 가까이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며 집 밖을 나가지 못했고, 다시 아침을 맞는다는 유일한 희망에 감사해 할 뿐이었다.
집에 유폐돼 생활하면서 몸무게는 30㎏ 넘게 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 때문에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문은 꼬박꼬박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홀로 85호 크레인을 지키는 이가 있다며 희망버스를 타자는 홍세화 선생님의 <한겨레> 칼럼을 읽게 됐다. 그 칼럼으로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아무 연고도 없이 찾아온 나를 환대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85호 크레인에 갇혀 있던 그이는 그 좁은 공간에 방울토마토를 심고 여러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세상을 열었다. 이후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았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나에 갇혀 있었다.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동료상담’이란 걸 알게 됐다.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3개월,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라는 인권단체에서 9개월 과정 교육을 받았다. 복지센터에서 동료상담에 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다면, 파도손에서는 중앙대 산학협력팀과 함께 마련한 이야기치료를 통한 동료상담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동료상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권수정 전 서울시의원(정의당)의 도움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을 탈피할 정도의 급여도 받을 수 있었다.
동료상담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전문가 중심의 ‘치료 및 재활’ 대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존중 및 회복’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동료상담가와 동료당사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동료상담을 통해 만났던 이들과의 여러가지 추억이 떠오른다. 약 부작용으로 잠을 주체할 수 없어 피곤해하던 동료가 자신이 하는 가사노동이 얼마나 값진 노동인지를 깨닫고 반응했을 때, 자기 탓만 하던 동료가 처음으로 부당하다며 세상에 분노했을 때, 고립 생활을 하던 동료가 지역 정신장애인권단체 리더로 다시 태어났을 때, 가족들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던 동료가 독립생활을 시작했을 때…. 삶의 모든 과정을 우정을 계기로 경험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준 순간들이었다. 동료들의 기쁨과 슬픔은 나의 것이기도 했기에 보람도 컸다.
동료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이 흔히 실패라고 하는 것들 속에 있는 무수한 진실들에 눈 뜰 수 있었다. 내 안은 여리고 작은 소리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철저히 혼자 버려진 것 같았던 경험들은 비슷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혼란스러워하던 동료들에게 소통의 다리를 놔주도록 했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이를 돕는 우정의 확산을 경험했고, 세상과 다시 한번 연결될 수 있었다.
사회를 향해 발언하게 되는 당사자들도 보았다. 아주 조금 열려있었던 세상을 향한 시선들이 정신장애를 둘러싼 낙인과 배제, 폭력과 억압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넓은 시야로 확대됐다. 우정이라는 계기를 통해, 그동안 고립돼 자책과 연민으로 신음하던 동료들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이 사회의 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성당>에는 앞을 볼 수 없는 손님에게 주인공이 대성당의 위엄을 설명해 주다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대성당을 그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손님은 말한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그러자 비로소 화자는 그에게 말을 건넨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동료상담도 함께 대성당을 그려가는 일과 같다. 환청과 망상과 고립에 둘러싸인, 사회에서 가장 가치 없는 존재로 취급받던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살리고 그와 더불어 세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그런 활동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낙인을 전복하는 혁명적인 효과를 지닌다. 이 이름 없는 노동이 사회에 더 알려지고, 제값 받으며 일하게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를 위해 정신장애인의 곁에 서는 다른 우정들을,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여러분들의 지지와 공감을 기대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