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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다비드상은 어쩌다 ‘포르노’로 몰렸나

등록 2023-04-04 15:03수정 2023-04-05 02:35

난데없이 ‘포르노’로 지목된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 김재욱 화백
난데없이 ‘포르노’로 지목된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 김재욱 화백

미켈란젤로(1475~1564)의 ‘다비드’상은 매년 100만이 넘는 관람객을 전세계에서 불러 모은다. 그런데 이런 걸작을 음란물로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모양이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최근 이 조각상 사진을 초등 6학년 ‘르네상스 미술’ 수업에 교재로 썼다가 “포르노를 보여줬다”는 학부모들 항의를 받고 교장이 사직한 일이 벌어졌다. 다비드상 소재지인 이탈리아 피렌체 시장은 “예술과 포르노를 혼동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일부 학부모의 놀라운 무지를 꼬집었다.

‘19금’ 취급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아랍에미리트(UAE) ‘2020 두바이엑스포’에서도 다비드상의 3D 복제품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어겼다고 해서 허리 아래를 완전히 가린 원통형 전시장에 ‘위리안치’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가 스물여섯이던 1501년 8월부터 1504년 1월에 걸쳐 완성한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작이다. 로마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으로 이미 엄청난 명성을 얻은 이 약관의 거장은 고향인 피렌체 정부(시뇨리아)의 의뢰를 받아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오랜 참주정에서 벗어나 시민이 주인인 공화정으로 복귀해 있었다. 정부는 그런 시대정신을 5.4m 높이의 거대한 카라라산 대리석에 영구히 새겨주길 바랐다. 동시대인 바사리는 “(공화정의) 상징으로 손에 투석기를 쥔 젊은이(…)가 피렌체를 용감하게 방어하면서 떳떳하게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기록했다.(<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5>)

골리앗(메디치 가문)을 물리친 다비드의 조상을 어디에 세울지를 놓고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등이 참여한 위원회는 결국 작가의 의견을 존중해 공화정의 요람인 베키오궁전 앞 노천으로 결정했다. 30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메디치 가문의 복고와 멸문까지를 지켜본 다비드상은 훼손 우려가 커진 1873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원래 자리엔 복제품이 놓였다. 또 하나의 복제품인 청동 다비드상은 아르노강 건너편 미켈란젤로 광장에 우뚝 서서 르네상스 발상지를 굽어보고 있다.

다비드상은 의인화를 통한 비유와 상징의 결정체다. 배경지식을 깨치지 않으면 흔한 에로물의 남배우로 보일 수도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일어난 일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계속 어린아이로 남게 된다”는 키케로의 경구를 새삼 일깨우는 사례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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