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나폴리 동양학대학교와의 교류프로그램에 참여해 3월부터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 머무르고 있다. 평소 외국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한국 사회에 살며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문제점들이 한국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어느 사회에나 있는 문제인지 구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여러 이탈리아 청년들과 어울리며 이런저럼 경험을 하게 됐다.
이탈리아는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여러모로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인 데다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성격이 닮았다고 했다. 가족중심 문화도 그렇다. 유럽인들은 성인이 되면 부모와 떨어져 독립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한데, 이탈리아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젊은이들이 비교적 많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탈리아 역시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와 주택문제 등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올 무렵 한국에서 가장 큰 뉴스는 출생률에 관한 소식이었다. 낮아져만 가는 출생률 때문에 나라가 소멸할 것 같다는 목소리는 진작부터 있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혼인율이, 출생률이 낮아지는 것은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에 한해서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한 이탈리아 친구와 결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다고 했다. 정말이냐고 묻자 “내성적이라 많은 사람 앞에서 드레스 입기 부끄러워”라고 말했다. ‘결혼’이 아니라 ‘결혼식’에 관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가족을 꾸리고 싶은 욕망은? “물론 가족은 꾸리고 싶지만 그것이 곧 결혼은 아니야” 한국인인 내게는 ‘가족을 꾸린다’는 ‘결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친구는 아닌 듯했다. 실제 결혼하지 않고 파트너와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30대 후반 자식을 둔 숙소 주인아주머니도 자식들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느꼈다.
나폴리에서는 유아차와 아기들을 무척이나 많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전체적으로는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으니, 다른 지역과는 차별되는 특색있는 풍경이란다. 나폴리가 특별히 출생 장려정책을 잘 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는 것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일찍 아이를 낳는 면이 있고, 남부 특유의 문화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친구는 말했다. 문화적인 배경과 사람들의 가치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아이를 낳지 않아서 나라가 망할 거라는 이야기는, 당장 먹고사는 것이 걱정인 한국 청년들에게 조금의 타격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청년의 인터뷰가 화제였다. 그러나 정말 단순히 밥 문제라고 한다면, 더욱 힘들었을 보릿고개 시대에 아이를 많이 낳았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출생이나 육아와 관련한 실질적인 지원 정책만큼이나 문화적인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미디어는 오히려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용기 내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체념하게 하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의 온갖 최악 괴담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자극적인 결혼생활 관찰 예능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미디어에 노출된 청년들에게 결혼에 관해 물어보면, 행복보다는 스트레스를 떠올리는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가족을 꾸리는 것이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으로 ‘감수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이어야 하는데, 스트레스투성이, 희생, 후회 이미지만 가득하다면? 도대체 왜 그런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청년들은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