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유지민 | 서울 문정고 1학년
평소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일찍 눈을 뜬다. 하지만 잠에서 깬 뒤에도 한시간 넘게 누워서 핸드폰을 보거나 멍때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나의 아침을 180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침 리추얼(ritual)을 실천하는 클럽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리추얼의 사전적 의미는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이다. 말하자면 아침 리추얼을 통해 매일 실천하는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한달 동안 아침에 무엇을 했는지 주 3회 이상 사진과 설명 글, 오늘 하루를 예언하는 ‘확언’을 함께 적어서 소셜미디어에 인증했다. 강제성은 없었지만 거의 모든 클럽 멤버들이 매일 적극적으로 인증에 참여했다. 더불어 단체 메신저방에서 각자 경험을 공유했다. 간단한 안부 인사, 책 구절 소개, 아침식사 메뉴 공유까지 각양각색 다양한 종류의 대화들이 오갔다. 월말엔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한달 동안 여정을 회고하고 각자의 감상을 나누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내 리추얼은 이랬다.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양치와 세수를 한다. 일어난 직후 많이 움직일수록 더 빨리 정신이 맑아진다. 몸과 방을 정리한 뒤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온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다 보면 온몸에 통증이 있는데, 아침 스트레칭을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짧은 일기를 쓴다. 주제와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걸 기록한다. 여기까지 리추얼은 고정돼 있고, 이후엔 아침식사 전까지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다. 최대한 휴대폰을 비롯한 미디어를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핵심은 계획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해도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침 일기쓰기는 가장 좋아하는 아침 습관이 됐다. 여태 일기는 당연하게도 저녁에 쓰는 거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채 글을 쓰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글과 기록을 사랑하지만 유독 일기는 쓸 엄두가 나지 않던 까닭이다. 이랬던 내게 아침일기는 진정한 일기의 매력을 알게 한 일등공신이다. 전날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오늘 가장 기대되는 일, 하루를 시작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 보통 세가지 내용을 담는다. 형식과 길이에 제한을 두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한달 동안 이렇게 아침 리추얼을 습관으로 만드는 동안 역설적으로 ‘할 일’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세워놓았던 하루 계획을 못 지키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다. 설령 계획을 다 지켰더라도 내일 지켜야 할 계획을 생각하며 미리 괴로워했다. 그러나 작은 리추얼을 꾸준히 실천하다 보니, 할 일이 남아 있더라도 오히려 푹 자고 일어나면 더 능률이 오르고, 억지로 일을 끝마치는 것보다 수준 높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의무가 의지로 변하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함께 아침 리추얼을 실천하며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힘이 됐다. 예전에도 몇번이고 아침시간을 더 의미있게 보내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 그 까닭은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의욕 없이 늘어지고 싶은 날, 메신저방에 올라오는 인증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멤버들의 리추얼을 따라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침일기 또한 많은 멤버들이 쓰는 걸 보며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어느 순간 습관이 된 것이다.
습관의 중요성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흔히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해주는 어떤 일이든 아침에 일어나 매일 습관화하다 보니, 어느새 단추가 한두개 단정히 채워지는 걸 느낀다. 꼭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탁월함’을 애써 만들려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려고 노력하려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