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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으로, 기능적으로

등록 2023-03-19 19:05수정 2023-03-20 02:05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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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한나 | <사랑의 은어> 저자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무언가 찾고 있는 인물이다. 또는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그런 인물을 탐닉적으로 묘사하는 책. 거리에서 그런 사람을 본다. 껄렁대는 것과는 다르고, 말하자면 영혼 한쪽이 거하게 뜯겨나간 것 같은 침울한 인상인데, 그런 식으로 보여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빈티지샵에서 산 옷 말고 낡은 옷을 낡은 채로 입고 다니는 사람 이야기다. 나는 영화 <본즈 앤 올>처럼 말하고 있다. 주인공 매런과 리는 식성이 같다. 식인하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냄새로 알아볼 수 있다.

의문을 한 몸에 지니고 다니느라 지친 사람을 보면 출구를 발견한 것처럼 몸 안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찬다. 거리에서 전망 없음의 동지와 스친 뒤, 나는 매일 가는 곳에 가고 매일 먹는 것을 먹는다. 사람들과 생활을 이야기한다. 회사가 없어지게 생겼어요, 근데 회사가 없어지는 게 낫죠.

친구 H는 회사에서 혼자 쫄병스낵을 먹는다. 그는 회사 앞 편의점에서 쫄병스낵 짜파게티 맛을 취향 있게 고른 다음 한 봉지를 뜯어 10분간 천천히 10개를, 다음 20분간 나머지를 먹으며 오후가 가는 것을 가늠한다. 그것을 매일 한다. 그는 새로운 한 봉지를 뜯을 때 너무나 설레인다면서도 퇴근하고는 충만해서 그걸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는 울적함을 잊게 할 짠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매일 같은 카페에 간다. 거기서 내가 아는 모든 인물을 만난다. 동료, 친구, 가족, 헤어진 연인과 동창. 카페는 수요일에 쉬는데, 늘 가던 시간 가던 길을 지나 익숙한 자리에 앉지 않으면 오늘이 아니라 어제가 이어지는 것 같다.

그 공간에 대한 나의 집착은 분위기나 탁월한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명의 주인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 테이블 뒤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 나지 않게 음식을 먹는 귀여운 사장들에게 중독된 것이다. 가게에 하늘색과 분홍색인 <미나리> 엘피(LP)를 갖다놓고 화장실에는 편백나무와 바질 향 핸드워시를 놓는, 동물을 환영한다는 둘을. 매혹은 환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일에 하루의 일부라도 쓰지 않으면 어딘가 막힌 기분이 드는 사람에게는 도시의 얽힘이 필요하다고도.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인 비비언 고닉은 뉴욕을 그리워하는 뉴욕 사람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브롱크스에서 보냈다. 맨해튼과 면한 시골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일을 “한 구역씩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가다 마침내 내륙 탐험에라도 나선 소녀들처럼 브롱크스를 가로질러 다니기에 이르렀다”고 쓴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사로잡고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사랑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건 곧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만 벌며 매사 가장자리에 남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전히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그는 모든 걸 싼값에 해결했다. 카페엘 가도 가판대에 서서 커피를 마셨고 어딜 가든 걸어서 이동했고 옷은 낡아서 해질 때까지 입었다. (…) 우리가 만나 어울리는 시간은 1+1 영화표, 싸구려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도시 곳곳을 산책하는 나들이 일정으로 채워졌다.”

이것이 파트너를 푸대접하는 가성비 연애를 권장하는 문장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자아정체성, 삶의 전략과 살아갈 장소를 선택하는 문제에 관해서 생각할 때, 괜찮은 카페에서 쫄병스낵 같은 것을 먹으며 고닉이 쓴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다. 또는 고닉처럼 동네를 걷기, 하루에 9킬로미터를 걸으며 오후의 우울을 걷어내기, 아직 되지 않은 나를 상상하기. 미래가 오면 기억도 안 날 짜릿한 공상을 계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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