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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경고

등록 2023-03-16 18:33수정 2023-03-17 02:34

마리아 고로스티에타(1976~2012). 멕시코의 정치가. 강경한 마약 정책을 지휘하다가 2012년 마약 조직에 의해 살해되었다. 2021년 멕시코 총선을 전후한 9개월 동안 마약 조직에 살해된 정치가는 8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위키미디어
마리아 고로스티에타(1976~2012). 멕시코의 정치가. 강경한 마약 정책을 지휘하다가 2012년 마약 조직에 의해 살해되었다. 2021년 멕시코 총선을 전후한 9개월 동안 마약 조직에 살해된 정치가는 8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위키미디어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왜 마약상은 모두 총을 들고 있어?’ ‘갱들이니까.’ ‘그러니까, 왜 갱들이 하냐고.’ ‘불법인 건 걔들이 하게 돼.’

카페 옆테이블의 대화를 우연찮게 듣게 됐지만, 아쉽게도 그게 전부였다. 옆자리 커플은 잠시 침묵하더니 태블릿 시청으로 되돌아갔다. 남자는 눈에 띄게 의욕이 없었지만 그의 대답은 나쁘지 않았다. ‘법이 없는 곳은 갱들로 채워진다’ 는 논리는 확실히 고전적이었다.

고지식하게 말하면 총이 안 보이는 마약 영화도 있긴 하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2004) 이 그런 것이었는데, 주인공인 콜롬비아의 10 대 소녀는 생계를 위해 마약 운반에 나선다. 그녀는 살아남지만, 함께 비행기를 탔던 친구는 몸속에서 캡슐이 터져 죽는다. 조직은 어쨌든 마약을 회수할 생각이기 때문에 영화는 좀 끔찍해진다.

갱이야 무기 휴대가 당연하니, 일반인 마약상 (그런 게 있다면) 도 과연 그런지 보자. 심약하고 선량한 남자가 큰돈이 필요해져 단기간 마약업에 뛰어든다. 목표한 돈만 벌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생각대로 될까? 이런 목사님 설교 같은 설정이 지겨울지 모르지만, 아무튼 <브레이킹 배드 >(2008) 에서 메스암페타민을 대량 제조한 고교 화학교사 월터는 문제에 부닥친다. 물건을 돈으로 바꾸려면 갱단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돈을 받아오기보다 목숨을 잃을 확률이 더 크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가 마약과 목숨을 동시에 지키는 방법은 스스로 갱들 뺨치는 살인마가 되는 것뿐이었다.

월터를 괴롭힌 수금 문제는 마약 거래의 여러 난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마약 장사의 가장 큰 곤란은 뜻밖에도 ‘가난’ 이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에 따르면, 마약상 대부분은 영세 대리점주와 같은 처지로, 부모 집에 얹혀사는 형편을 벗어나지 못한다. 상납금을 바치지 않는 ‘본사 직원’ 은 그보다는 낫지만, 최저 시급보다 못한 급여를 받는다. 영화에 나오는 황제 같은 삶을 누리는 건 조직의 최상층 , 사장과 심복 몇명뿐이다. “마약 사업의 구조는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와 같다.” 그 이윤은 종사자들의 착취에 의존한다. 레빗은 마약 조직에 가입한 소년이 나중에 돈을 만질 확률은 연예인 지망생이 할리우드 스타가 될 확률과 비슷하다고 계산했다. 지저분하고 위험한데 실은 돈도 못 버는 이 비즈니스가 계속 확장되는 이유는 뭘까? 어차피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이 조직에 끝없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국 유명 연예인이 마약 복용으로 체포됐다. 그런 뉴스가 새로운 건 아닌데 , 공급자인 마약상이 어떤 살아 있는 사람으로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마약상을 외국 영화에서나 볼 뿐 길에서 마주칠 일이 드문 나라에서 산다는 건 그런 의미다. 문제는 그 나라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의 경악할 통계는 국내 압수된 코카인과 필로폰이 전년 대비 800%, 헤로인은 무려 1만3700%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마약에 대한 접근성과 태도 역시 변화 중이다.

미국 내 토론과 정책은 타국에 영향을 미친다. 2012 년 이래 비의료용 대마초 사용을 합법화한 주는 열개가 넘었다. 그리고 이 조치를 되돌린 곳은 없다. 그 주들은 단속이 무의미해진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관리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런데 ‘현실’ 이 아직 바닥이 아니고, 지옥문이 충분히 열리지 않은 거라면 어떻게 될까?

2022 년 리버럴한 월간지 <애틀랜틱>은 연성 마약과 온라인 도박의 관용론자들, 합법화가 피해를 줄인다고 설교하는 “예언자들” 을 겨냥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순진하다” 고 탄식했다. “그들은 마을 앞 94번 도로가 전부 대마초 광고판으로 뒤덮일 걸 예상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 광고판들은 미래의 경고로 보인다. 아직은. 그러나 10 년 뒤면 그것에도 다들 무감각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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