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대교 난간에 자살 방지를 위한 문구, ‘누군가 내 곁에 있어’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언니, 나 이번 학기 휴학하기로 했어.”
최근 친하게 지내던 한 후배가 개강을 앞두고 연락해왔다. 갑작스레 휴학이라니, 같이 다니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잠시, 어떤 이유에서건 응원해주자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취업과 입시를 위해 쉼 없이 내달려온 대학생에게 휴학은 특권 아니겠나. 멀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인턴 경험 또는 고시 준비를 위해서거나, 심지어 아무 이유 없는 휴학이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한 호흡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그 결정에 무조건 손뼉 쳐줘야지! 싶었다. 마음속으로 ‘그래 탁월한 선택이야’라는 다음 말을 떠올리며 “쉬기로 한 이유는 뭔데?”라고 물었다. 생각 밖 답이 돌아왔다. “나, 공황장애래.”
어느 날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에서 갑자기 눈앞이 핑 돌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더란다. 황급히 지하철에서 내렸고, 다행히 지나가던 시민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아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순간 찾아온 공포는 말로는 설명할 수조차 없어, 이튿날 급하게 정신과를 찾아갔다고 했다. 그나마 진료 예약과 대기로 여러 병원에 발걸음한 끝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단다.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정말 죽을 것 같더라…. 아니, 정확히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후배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금방 나을 거야’ 같은 근거 없는 낙관의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러웠다. 섣부른 위로로 동정심을 느끼게 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결국, 일단 병원 잘 다니고, 쉬어가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절대 네 잘못은 아니니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당부로 통화를 마쳤다. 그 뻔한 말들이 후배가 버티는 데 작은 힘이라도 돼주길 빌면서.
당시 그 후배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주변에 번아웃 증상을 호소하거나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후배보다 어린 친구도 있고, 좀 더 선배인 대학생, 직장인도 있다. 그래서 안다. 그런 마음의 병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란 걸. 그런 이들과 증상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마음 아파하면서 어렴풋이 갖게 됐던 생각이, 이번 통화를 계기로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이런 개인의 아픔이 과연 오롯이 개인만의 것일까. 개인의 불행이나 의지력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우리 사회 너무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우리 곁을 떠나기까지 하는 이들도 많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대 사망자 56.8%, 30대 사망자 40.6%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였다.(2021년 기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청년특별대책 가운데 하나로 청년들에게 바우처 형태로 심리상담 비용을 지원하는 ‘청년 마음건강바우처’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정부 안팎에서 이른바 ‘코로나 블루’로 청년들의 심리적 고통이 심각하다는 데 공감대가 마련되면서 다행히 새로운 제도는 그 첫발을 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지원 규모로 아쉬움도 컸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를 보면, 19~34살 청년 약 1만5천명에게 최근 1년 동안 번아웃(소진) 경험이 있냐고 물었더니 33.9%가 “있다”고 응답했다. 우울증상 유병률은 6.1%(남 4.9%, 여 7.5%), 최근 1년 심각하게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답변도 2.4%(남 1.8%, 여 3.1%)에 달했다. 이제 청년들 정신건강 문제는 정부가 한시바삐 기민하게 대응에 나서야 하는 문제가 됐다. 현재 사회 구성원이면서 미래 한국 사회의 주역인 청년들의 문제는 진보나 보수, 여야로 갈릴 문제도 아니니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길 기대해본다. 당장 다음달 발표될 윤석열 정부의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이 얼마나 내실 있을지가 그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청년들 마음에 켜진 경고등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