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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입맛의 정치학에 ‘개취’는 없다 ‘계문’이 있을 뿐

등록 2023-03-14 18:23수정 2023-03-15 02:35

06 _입맛
형편이 어려운 빈곤가정 주부들의 장보기는 근심 가득한 노동이다. “젓가락 갈 데가 없다”는 밥상 앞 불평을 떠올려보시라. 이 경우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는 기쁨이 아니라 자원의 부재를 떠올리게 하는 긴장의 자리가 된다.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서민들이 소고기를 사먹은 것은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심리적 허기를 달래고 긴장을 풀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음식은 높은 계급정체성의 표식이자, 우월한 심미적 기호와 연결된다. 반대로 하층 계급의 빈곤상태를 나타내는 음식들도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특정 음식은 높은 계급정체성의 표식이자, 우월한 심미적 기호와 연결된다. 반대로 하층 계급의 빈곤상태를 나타내는 음식들도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오래전 일이다. 서울에서만 평생 살아온 지인이 “대구에 가 보니 수육을 돼지로 삶더라”며 웃었다. 서울 음식이 대구 음식보다 수준 높고,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윗길이라는 은근한 차별의식이었다. 소든 돼지든 삶는 사람 마음이다. 지금 같으면 <노비와 쇠고기>(강명관)를 인용해가며 서울 사람들의 별난 소고기 사랑과 백성 수탈·착취의 역사를 읊었겠지만 그땐 ‘입 짧은 서울내기라 안됐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대구 출신으로서 대구 음식은 타지 사람들이 모르는 맛이지, 맛없는 맛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입맛은 성인이 된 뒤에도 꾸준히 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구의 뭉티기(소 생고기)와 따로국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30년 단골 따로국밥집을 찾아 밥을 먹기도 했다. 서울 사람인 그는 왜 대구 음식으로 정치를 할까. 대구는 윤 대통령이 1994년 검사로 첫발을 뗀 초임지였고 2014년 좌천성 발령을 받아 3년간 머문 유배지였다. 대통령의 대구 음식 ‘먹방’은 정치적 이벤트지만, 외면받던 시절 위로받은 음식이겠거니 그렇다 치자. 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고 입맛에 딱 맞는다고 말했다는 기사까지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김 여사는 지난 3일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 국산 박달대게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큰돌이’라고 대게에 이름을 지어주더니 쪄달라고 해서 대통령과 먹겠다며 사갔다. 사람들은 으스스하다고 말했지만 인간의 입맛이란 그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구 단골집으로 이름난 국일따로국밥의 한상차림.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의 대구 단골집으로 이름난 국일따로국밥의 한상차림.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부자들은 길거리 떡볶이부터 최고급 정찬까지 자연스럽게 향유한다. 국산 생물 박달대게는 서민음식은 아니다. 서민들이 칼국수 속 조개껍데기를 쌓는 동안, 부자들은 갑각류 껍데기로 성을 쌓는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해산물 뷔페는 성인 1인당 26만원이 넘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광고에서 허겁지겁 국밥을 먹는 영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사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간장게장이라고 한다. 웬만한 대게 식당에선 요새 2인상 한접시 10만원도 넘는다.

입맛은 평등하지 않다. ‘개취’(개인 취향)는 없다. ‘계문’(계급 문화)이 있을 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아비투스’는 타인들과 구별되는 계급 구성원들의 취향, 성향체계 등을 가리킨다. 특정 계급 구성원들은 타 계급과 구별되는 아비투스를 지향하며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한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한우 짜파구리’를 두고 봉준호 감독은 아이의 ‘초딩’ 입맛에 부자 엄마의 과시욕을 섞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우 짜파구리는 입맛과 영양의 계급적 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음식사회학 연구들은 공통으로 부유층의 음식 선택이 경계긋기, 구별짓기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특정 음식은 높은 계급정체성의 표식이자, 우월한 심미적 기호와 연결된다. 반대로 하층계급의 빈곤 상태를 나타내는 음식들도 있다. 약사 겸 음식저술가 정재훈은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에서 계층별 음식 선택 차이가, 경험에서 오는 선호도 차이일 것이라 본다. 아이들이 잘 먹는 싸구려 정크푸드 중심으로 장을 보면 경제적일지 몰라도 자녀의 입맛과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층 가정은 온 가족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식단을 선택한다. 좀더 형편이 어려운 빈곤가정 주부들의 장보기는 근심 가득한 노동이다. “젓가락 갈 데가 없다”는 밥상 앞 불평을 떠올려보시라. 이 경우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는 기쁨이 아니라 자원의 부재를 떠올리게 하는 긴장의 자리가 된다.(<메뉴의 사회학>, 앨런 비어즈워스 등)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서민들이 소고기를 사먹은 것은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심리적 허기를 달래고 긴장을 풀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뽈락, 굴 등을 넣은 남쪽 지역 스타일의 김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뽈락, 굴 등을 넣은 남쪽 지역 스타일의 김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주부가 차리는 ‘집밥’은 오래전부터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학자들은 집밥이 국민정체성, 국민문화 재생산의 중심이 돼왔다고 분석한다. 집밥은 ‘적절한 식사’의 상징이고 가정과 가족을 생산하는 수단이며, 감정적·정서적으로 건강한 음식인 동시에 여성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973~75년 국제 식량파동으로 정부 주도 혼분식장려정책이 시행됐다. 주부는 자녀의 입맛을 훈육하는 국가의 일꾼으로 호명됐다. 국가는 ‘주부애국’을 내세워 식량정책에 협조하는 것이 주부의 책임이며 애국 운동이라고 강조했다.(<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주영하 등)

1980년대에는 집밥의 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88년 맥도날드가 서울 압구정 1호점을 내며 한국에 진출한 것은 신호탄이었다. 외식이 늘자 ‘자녀들이 엄마의 정성 담긴 맛을 잊을 판’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공장에서 만든 반찬이 식탁을 점령한다’는 등 위기감이 가득했다. ‘아이들 입맛이 미국 스타일이 돼 간다’는 통탄도 하늘을 찔렀다.(1991년 5월20일치 <매일경제>, 1995년 5월4일치 <경향신문>) 마치 국민 엄마, 국민 음식을 잃는 것처럼 호들갑 떠는 데는 좌파, 우파가 따로 없었다. 세계화와 더불어 나타난 식생활과 주부 역할 변화를 국가정체성 위기와 연결한 셈이다.

실제로 국민 음식은 변화한다. 이제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전망 2023’에서 작년 3대 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의 1인당 소비량을 58.4㎏으로 추정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에서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에 머물렀다. 지난해 한국인은 쌀보다 고기를 약 1.7kg을 더 먹은 셈이다. 1970~80년대 부유층 밥상의 점령군 행세를 하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칼로스(‘캘리포니아의 장미’란 뜻)쌀도 이제는 찬밥이 됐다. 세계적으로 채식이 친환경, 미래지향적 식생활로 눈길 받지만 한국의 국민 음식은 육류 쪽으로 바뀌고 있다.

고려인 이주노동자의 아침 밥상.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려인 이주노동자의 아침 밥상.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음식 선택은 성별, 인종적, 종교적 정체성과 복잡하게 연관된다. 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오래전부터 특권층이 남자와 어른들에게 ‘이익’을 할당하며 자신들만의 높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고 정치적 권력으로 연결했다고 보았다. 음식은 부와 권력의 원천이었고 동물성 식품은 상징적 힘을 가졌다. 스테이크 같은 무거운 음식은 남성적, 샐러드 같은 가벼운 음식은 여성적이라는 가정은 각자의 음식선호에도 영향을 미친다. <H마트에서 울다>를 쓴 한인2세 미국인 미셸 자우너는 엄마를 애도하며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라고 정체성을 자문한다.

케이(K)-푸드(한국 음식)가 세계적 유행이라지만 어떤 서구인들은 보신탕, 번데기, 메뚜기 먹는 한국인을 혐오한다. 대구 이슬람사원 건설 현장 앞에서 돼지고기 잔치를 벌이고 돼지머리를 놓아두고 돼지기름으로 추정되는 액체를 뿌린 것은 다른 종교·문화에 대한 멸시와 배척 이상이다.

식품의 생산, 분배, 판매, 섭취에 이르는 ‘푸드 시스템’은 정치적 문제다. ‘단짠’ 입맛을 자극해 먹기를 멈추지 않는 음식 중독에 빠지게 하고 식품 대량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의 전략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음식 좌파 음식 우파>를 쓴 하야미즈 켄로는 ‘정크 지향’이 강할수록 우파, 유기농을 즐길수록 좌파로 분류한다. 그러나 중산층과 부유층이 다수인 음식 좌파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적다는 점에서 기존 좌파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또 식량 부족과 환경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음식 좌파가 유전자조작 같은 과학기술을 선악이 아닌 현실적 문제로 보며 우파와 손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식품 분야의 빅3’ 문제인 기아, 비만, 기후위기를 타개할 푸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세계인 공통의 정치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혼밥’하는 아이들의 행복감이 낮다는 조사결과를 보거나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나눠 받아먹고 살았다는 청년의 소식을 읽고서도 곧바로 ‘먹방’과 ‘푸드 포르노’를 시청하는 게 일상이다. 사실은 내 입맛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만들어가는 일도 돈과 시간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음식만큼 인과응보가 확실한 것이 있을까.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을 이루고, 다수가 선택하는 음식이 세상의 건강을 좌우할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의 맛집을 찾아가는 것만큼 정치인이 음식 정치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지켜보는 것도 필요할 텐데, 정책보다 맛집 정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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