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가정의 돌봄 지원을 위해 도입하는 부모급여 지급이 시작된 지난 1월25일 서울 시내의 한 주민센터에 부모급여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8을 기록했다. 벌써 5년 연속 1 미만이다. 전쟁 때나 기록할 법한 낮은 출산율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전쟁 같다는 뜻일까. 격차 큰 노동시장, 과도하게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남녀 불평등과 여성 경력단절, 엄마의 독박육아, 과밀한 서울 집중, 서구보다 훨씬 낮은 혼외출산율, 치열한 경쟁과 남과의 비교 문화 등 한국의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청년의 삶을 개선하고 여러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함께 역시 저출산 예산을 늘리자고 말하고 싶다. 엄청난 예산을 썼는데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흔히 들리는 이야기는, 매년 수십조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사용하고도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다는 것이다. 2021년 저출산 예산은 46조원이 넘었고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약 280조원을 사용했지만, 출산율은 2017년 1.05에서 계속 하락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을 올리는 데 실패했다는 주장은 돈을 써도 소용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이 막대한 금액 중에 가족이나 출산과 직접 관련된 예산은 일부일 뿐이다. 2021년의 경우 지방정부 몫을 제외한 약 43조원의 저출산 예산 중에서 출산·난임 지원과 양육, 보육, 가족복지 등 저출산과 직접 관련 있는 예산은 약 14조원에 불과했다. 대신 부동산 관련 임대, 융자 사업이 약 25조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0조원에 달하는 주택구입, 전세자금 융자도 여기에 포함돼 있는데, 이는 무주택 가구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그나마 대출금액이다. 그해 저출산 예산에는 또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이나 심지어 관광 활성화 기반 구축, 게임산업과 만화산업 육성 사업도 포함돼 있다. 정작 초등돌봄교실이나 영유아보육 예산은 늘지 않았다.
출산이나 보육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지원은 국제적으로도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아동수당이나 육아휴직 기간 소득 지원, 보육서비스 지원 등을 포함한 정부의 ‘가족 관련 지출’(family benefit spending) 실태를 분석해 발표한다. 2019년 평균 출산율이 1.61인 오이시디 가입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관련 지출 비중은 평균 2.1%였다. 한국의 경우엔 2013년 1%를 겨우 넘었고 2017년까지 약 1.1%였는데, 최근 증가해 2019년 1.4%까지 올랐다. 선진국 중에서는 대체로 가족 관련 지출 비중이 높은 국가가 아이를 많이 낳는데, 프랑스(2.7%)와 스웨덴(3.4%)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가족 관련 지출 중에서도 현금지급 비중이 특히 낮고, 국내총생산 대비 공적교육지출 비중도 매우 낮다.
아이를 가지는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부모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들은 정신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를 낳은 부모의 행복도가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낮다고 보고한다. 그러니 아이를 안 가지는 젊은이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22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양육비용이 낮거나 유급 출산휴가가 길면 행복도의 차이가 작아졌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가족지원정책이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최근 한 실증연구는 과거와 달리 2000년대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나라가 출산율이 더 높다며, 일과 가정의 양립에 보육과 육아휴직 등에서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고 보고한다.
물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돈만 많이 쓴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돈을 쓰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현재 정부도 아기를 가진 가정에 부모급여를 지급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지원이 가장 효과적일지 논의가 발전돼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지원 확대처럼 지속가능한 맞벌이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않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한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