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올해는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가 죽은 지 200년이 되는 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리카도는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비교우위론’의 창시자쯤으로 등장할 뿐이지만, 사실 그는 현대경제학의 성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철학적·역사적 성격이 강한 애덤 스미스의 논의를 연역적·분석적 방법으로 풀어 오늘의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을 경제학에 부여했고, 그의 주저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는 분량은 스미스가 쓴 <국부론>의 절반도 안 되지만 가치론과 가격론, 분배론, 지대론, 조세론, 기계와 기술혁신, 화폐금융론, 국제무역론 등 경제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칭찬에 박한 마르크스조차도 그를 고전경제학의 완성자로 추켜세웠고, 리카도의 이론은 존 스튜어트 밀과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앨프리드 마셜을 거치며 현대경제학의 근간 가운데 하나로, 요란하지는 않지만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하는 양대 집단인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경제를 파악했는데, 이런 단순함은 리카도 경제학의 중요한 미덕이다. 보통 단순한 이론은 현실의 복잡함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난받기 쉽지만, 반대로 그런 복잡성에 가려진 핵심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는 장점도 갖는다. 리카도는 대체로 후자에 해당한다. 이런 리카도의 미덕은 그가 살았던 200여년 전보다 훨씬 복잡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에게도 울림을 준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니 말이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이나 노동시간 규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은 그런 본질이 여전함을 방증한다.
그러니 리카도가 어떤 사회경제적 현상이든 그것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특히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리카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자본가와 노동자를 서로 별개인 집단으로 다루는 데 익숙해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컨대 그는 정부의 과세나 물가상승이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실질소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데, 이는 오늘날의 일반적 통념과 배치된다. 물가가 올라 서민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뉴스는 오늘치 신문 어딘가에도 나와 있을 것이다.
리카도가 과세나 물가상승이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 까닭은, 소득분배에서 노동자의 몫, 즉 임금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비를 반영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은 ‘최저’임금제가 사실상의 ‘일반’임금제로 자리한 한국에서 특히 유효하다고 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과세나 물가상승에 비례해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큰 사달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최근 우리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서민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제 에너지가격은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라 서민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경제에서 리카도의 시각을 복원한다는 것은, 이렇듯 경제 과정을 자본가-노동자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오늘날 경제는 200년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특히 국가의 역할이 커졌다. 최근 에너지가격 상승과 관련해서도 사실상 정부가 그 상승분 대부분을 틀어막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래도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 지금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로 쌓이고 있는 그런 부담분은 결국 민간 주체들이 지불해야 하고, 리카도에 따르면 그것은 자본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비용을 기꺼이 내려는 자본가는 거의 없으며, 현실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그들은 이를 회피하고자 노력할 유인이 있다. 생각해보면, 에너지가격 상승분을 물가에 즉각 반영시키지 않고 일단은 정부의 재정에 태우는 현재의 방식은, 수익자부담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이 아니라 자본가라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여기서 정부부채란 ‘자본가’의 부담을 ‘국민’의 부담으로 탈바꿈시키는 도깨비방망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자본가가 자신이 부담할 비용을 회피하면, 그리하여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줄고 노동력의 재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어떻게 될까? 당대의 맬서스 등과 함께 리카도가 내놓는 대답은 인구 감소다. 이쯤 되면 200년 전에 죽은 리카도는 오늘날의 저출생 문제의 해법에도 유용한 빛을 던져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