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당기를 흔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최혜정 | 논설위원
국민의힘 개혁 세력을 자처한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바람은 전당대회 본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후보들을 설레게 한 역대급 투표율(55.1%)은 뚜껑을 열어보니 ‘영끌’ 조직투표의 결과였고,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당정일체의 꿈은 친윤계 지도부 구성으로 현실화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대통령의 승리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친윤 감별만 난무하던 전당대회 시즌 1의 결말이다. 총선 때까지 이어질 시즌 2에는 대통령에 맞선 자들에 대한 ‘심판’이 포함될 것 같다.
김기현 대표는 취임 첫날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만나 “당이 정비가 안 돼 있다 보니 대통령께서 일하시는 데 곤란한 점이 많이 발생했다”, “그런 것은 다 제거하고 국회와 정당 문제는 안정적으로 조치하며 리더십을 세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은 천아용인을 “선거판에 뛰어든 훌리건들”이라고 규정하며 “비정상적 행위를 당에서 영구히 추방해야 한다는 판단을 (당원들이) 한 것”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어대현’(어차피 대표는 김기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투표 결과를 놓고 ‘1년차 대통령 힘 실어주기’ ‘이준석 트라우마’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무대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대표 적합도 1위를 달리던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하기 위해 전당대회 룰을 지난해 말 당원 100% 투표로 변경했다. 2004년 ‘민심’(여론조사)을 반영한 경선 규칙을 만든 뒤 18년 만의 변화였지만 토론 한번 없었다. 지지층의 호응을 받던 나경원 전 의원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주저앉았고, 안철수 의원은 후보 단일화 지분을 암시하며 윤 대통령에게 ‘친한 척’했다가 “국정운영의 적”이라는 주먹질에 나자빠졌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들이 전당대회 기간 김 대표 선거운동에 나선 것은 헌법이 정한 공무원 정치중립 의무 위반이자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당내 경선에서 경선운동을 할 수 없다’(공직선거법 57조의6 제2항)는 실정법 위반 혐의가 짙은데도 대통령실은 문책은커녕 뭉개기로 일관한다.
지난해 9월에만 해도 ‘차기 당대표 선호도’ 2~6%에 머물던 김기현 후보는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은 끝에 득표율 52.9%로 결선투표를 피할 수 있었다. 다르게 보면 대통령이 유력 후보들을 주저앉히고, 대통령실 직원까지 발벗고 뛰었음에도, 당원의 47%는 비주류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천하람 후보는 정치 입문 3년이 갓 지난 신인인데다 전당대회 후보 등록 마감 직전 출마를 결정했다. 전당대회 이후, 당내에선 그를 지원한 이준석 전 대표의 영향력이 천 후보 득표율(15%) 정도라며 비아냥대지만, 이 표의 확장 가능성까지 무시할 순 없다. 또 일반 여론조사가 포함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2021년 6월 당대표 경선에서 당시 이준석 후보는 당심에선 나경원 후보에게 밀렸지만, 민심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대표로 선출된 바 있다.
이제 앞으로 모든 책임은 대통령과 친윤 지도부가 오롯이 짊어지게 됐다. 집권여당은 이번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윤석열의 당’이 됐다. 취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지지율 30%대에 머무는 윤 대통령과 운명공동체가 됐다.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은 본인의 이름으로 치른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과 지지율에서 성과를 못 내면 여당 역시 그 책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총선은 당원들끼리 하는 투표가 아니다. 당내 조직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민심을 얻어야 한다. 특정 계파가 당을 장악하면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에는 도움될지 모르나, 민심의 변화에 신속히 조응하기는 어렵다. 당 주류에게는 눈엣가시겠지만, 천아용인은 국민의힘 개혁세력을 표방하는 ‘브랜드’가 됐다. 국민의힘의 변화를 바라는 정치적 에너지가 존재하는 이상 이준석과 천아용인 ‘제거’에 성공한다 해도 또 다른 이준석과 천아용인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간은 5년 임기 윤 대통령이 아니라, 가능성을 지닌 신인 정치인의 편이다. 이들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당 밖 민심을 잡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지난 8일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장에 입장할 때 울려퍼진 ‘민중의 노래’에는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분노한 자들의 노래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의 음악이네”라는 가사가 담겨 있다.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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