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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주식 백지신탁과 공직 윤리

등록 2023-03-08 18:52수정 2023-03-09 02:38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고위 공직자가 3천만원을 초과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이를 금융기관에 맡겨(백지신탁) 60일 안에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재산 처분을 제3자에게 맡겨 공적 직무와 개인적 이해 간의 충돌을 막도록 한 것이다. 주식 처분에 이의가 있으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해 직무관련성 여부 판단을 받을 수 있다.

백지신탁 제도는 애초 1983년 공직자윤리법 제정 당시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지명자의 주식 스톡옵션이 도마 위에 오르며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진 장관은 삼성전자에서 받은 70억원가량의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1천억여원의 이익을 얻게 되는 상황이었다. 직무관련성 논란 끝에 그는 스톡옵션 행사를 포기했고, 이듬해 치러진 17대 총선에선 여야 모두 주식 백지신탁 제도를 앞다퉈 약속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백지신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주식 백지신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각에선 백지신탁 제도가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입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정부의 첫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주식 백지신탁 문제로 사흘 만에 공직을 포기했다. 주식처분 요구가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배영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010년 본인·가족의 주식을 처분하라는 주식백지신탁심사위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2심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에 주식 백지신탁 관련 법 조항이 재산권을 침해하는지 등 여부에 대한 위헌 제청을 했고, 2012년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공직자들의 불복 소송이 시간끌기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송 기간 동안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최근 박성근 국무총리비서실장은 건설사 대주주인 배우자의 회사 지분을 백지신탁하라는 결정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도 배우자 주식 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불복 및 시간끌기 소송으로 백지신탁 제도가 무력화될까 우려된다.

최혜정 논설위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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