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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 시가 뒤엉켜 완성되는 인생 변주곡

등록 2023-03-08 18:33수정 2023-03-09 02:40

잘 익은 호두 열매. 게티이미지뱅크
잘 익은 호두 열매.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개학식. 강당에 모인 아이들에게 잠깐 발언할 짬이 내게 주어졌다. 프로젝터를 켰다. 미리 준비한 시 한편을 차분히 읽는다. 시가 노래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맞혀보라고 말한 터였다. 시구는 연이어 흐른다.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첫번째 손 든 아이는 수박이라 했고, 두번째 아이가 호두라 답했다. 그렇다. 그 시는 안희연의 ‘호두에게’였다.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아차 싶었어. 인터넷에서 ‘호두열매’를 입력했지. 호두가 건조되기 전에는 이렇더라.” 매실처럼 싱그러운 열매 사진이 화면에 떴다. 아이들은 “우와” 하고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58년 동안 호두를 보았고, 껍질 깨뜨려 맛나게 먹어왔어. 하지만 갈색 호두에게 초록빛 청춘이 있으리라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어. 이 시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지. 갑자기 세상 모든 호두에게 부끄러웠고, 미안해지더라.” 여기까지만 할까 하다가 어쩔 수 없는 선생인지라 한마디 덧댔다.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지? 어떤 사물을 색다르게 보고 싶어? 그러면 시를 읽어봐. 아니, 더 나아가 너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의 세계를 확장해보렴. 이번 학기 목표를 그렇게 정하고 열심히 살아보자.”

런던에서 공부할 때 온갖 종류의 문서와 마주쳤다. 돈을 벌면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공문서부터 화물선 설계 계약서,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핸드북에 이르기까지 내 읽기 목록은 한층 다양했다. <가디언>을 주말판까지 구독하던 열독자였다. 원문의 난이도에 따라 달랐지만, 집중력과 시간을 투입하면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영시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하, 어떤 언어든지 그 말로 쓰인 시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언어의 정점을 간파해 잘 다룰 수 있다는 걸 뜻하는구나.’ 그러니 다음 세대에게 무엇인가 전수해야 한다면 한국어의 꼭짓점을 찍고 있는 분야, 즉 시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시는 국어교과를 넘어서서 문명교과라 본다.

한 학기에 한번은 가방에 시집 30권쯤 담아 교실로 들어간다. 한 아이당 시집 3권을 무작위로 안긴다. “너희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표현을 하나씩 골라봐. 자세히 읽을 필요는 없어. 이해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책장을 넘기며 눈으로 글자를 쭈욱~ 촬영하다가 ‘아, 이거다’ 싶은 대목이 있으면 표시해 두길.”

‘어느 날 몹시 파랑치던 물결이 멎고/ 그 아래 돋아난/ 고요한 나무 그림자처럼/ 당신을 닮은 그리움이 생겨났습니다’(이성복, ‘비단길1’). 오, 최근 연애 시작한 거야? 아뇨. 그냥 누군가를 막연히 좋아하기 시작하면 멋지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어요.

‘하므로 저술가들은 용서받지 못한다/ 그들은 질문하며 발뺌했기에’(장정일, ‘텅 빈 껍질’). 질문받는 게 여전히 싫은가 보네. 그보다는 ‘발뺌’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콕 박혔어요. 요새 제가 좋아할까 미워할까 망설이게 하는 애가 있는데, 걔가 꼭 그러거든요.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꾸 딴청만 피워요.

최근 시인들은 소통 부재와 의미 전달의 불가능성, 일상에 배어 있는 무의미와 무관심을 퉁명스레 노래한다. 나처럼 시를 통해 서정성과 통찰력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이 줄어든 모양이다. 어쨌든 위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하다가 신기한 발견을 했다. 아이들은 의미가 흐릿한 난해시 가운데서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을 더 많이 찾아낸다. 시어와 아이들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신비롭게 만나는 것이다. 마치 이집트 상형문자를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면 어떠랴. 시어와 아이들 마음이 우연히 만나 시가 자기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잠시라도 느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의 세계로 우리를 깊이 이끄는 탁월한 안내자 신형철 교수는 <인생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고. 시 문외한인 우리 아이들이 신 교수의 성찰을 입증한다. 삶과 시는 이렇게 만나기 시작해 평생을 뒤엉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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