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5월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포드 전기차 공장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35억달러를 투자해 2026년부터 미시간주에서 전기차 40만대분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되 기술과 장비, 인력은 중국 배터리회사 닝더스다이(CATL)가 제공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무늬만’ 포드 생산인 셈인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수혜를 노리며 외국인투자심의도 비켜 가려는 ‘꼼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발표 당일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이 정부에 꼼꼼한 심의를 요구하고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너지 및 천연자원위원장)도 계약서를 살펴보자고 벼르니, 아직 결말을 예단하긴 이르나 빅뉴스가 터진 게 분명하다.
우선 조 바이든 정부의 위선이 도마 위에 올랐다. 포드 전기차 담당 부사장은 발표 당일 이번 투자는 국내 투자라고 강조하며 백악관과 행정부의 ‘그간의 지원’에 사의를 표했고, 에너지부 장관은 바이든의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미시간 주정부도 2500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10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 공산당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며 포드-닝더스다이 공장 설립을 막은 버지니아 주지사는 ‘공화당 대선 후보 욕심에 버지니아의 이익을 날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북미 전역을 보조금 수혜 대상으로 명시하지만, 만일 미국이나 미국계 회사가 아니었어도 백악관이 지원에 나섰을까. 캐나다에서는 “미국 정부가 캐나다에는 화웨이와의 결별을 강요하며 닝더스다이와 손잡은 포드의 위선”(<더 레코드> 2월23일치)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의 ‘중국위협론’에 빨간불이 켜졌고, 이제 누가 누구와 싸우는 건지 혼란스럽다.
미국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바탕에 있는 냉혹한 질서를 읽는 힘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비슷한 시기 발효된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선진국인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전기차 배터리는 미국이 후진국이고, 이번 사태를 통해 자국 간판산업의 기후 전환과 경쟁력 제고가 급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포드 창업자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윌리엄 포드 회장은 닝더스다이가 자사의 리튬인산철 배터리 내재화를 도울 것이라고 반겼다. 중국에서는 핵심기술의 대미 유출을 우려한다지만, 실은 포드의 중국 진출 50년 만에 중국 배터리 업체의 미국 진출이라는 쾌거에 환호한다. 미국의 자존심에 금을 낸 역사적 순간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숨은 주역 ‘시장’도 소환된다. 경쟁사들보다 적자가 심한 포드가 재기 발판을 마련하려면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값싼 리튬인산철 배터리에 눈 돌려야 했는데, 리튬인산철 최강자인 닝더스다이와 손잡으며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쪽 한국 기업들에 견제구도 날렸으니 일석이조가 됐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7%를 차지하는 1위 업체 닝더스다이도 포화 상태로 향하는 중국을 벗어나 장기적 시각으로 미국 시장 내 교두보를 마련하면서 최대 고객 테슬라를 견제해 일거양득이 됐다. 중국 언론 <차이나 타임스>가 이번 발표를 ‘밸런타인데이의 국제결혼’에 비유한 게 통렬하다.
이번 사태는 최근 재편 중인 세계 경제 질서를 신냉전으로 보는 시각에 죽비를 내리친다. 선별적 진영화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또 미-중 전략경쟁이 국가에 시장까지 얽힌 고차 방정식임을 알렸다. 투자 발표 이튿날 2.7% 상승으로 마감한 포드 주가는 시장이 이를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묘수’로 읽었다는 박수갈채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을 예고한다.
종류가 다른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력하는 한국 기업들은 당장의 피해는 없다고 방심할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확산하며 관련 특허를 독점한 중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안착한다면,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시장도 잠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나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여전히 기대 난망일 것이다.
미국은 우방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막으면서 닝더스다이에 빗장을 풀었다. 이런 식이라면 우방은 미국 주도 ‘신뢰가치사슬’ 구축을 신뢰하기 힘들다. 우방이 봉인가. 중국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며 노골적인 중국 봉쇄 책략을 설파하지만(<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마이클 베클리·핼 브랜즈) 정작 그 길에 들어서 제 코가 석 자인 자국 민낯은 못 보나 보다. 부디 <미국은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읽을 일은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