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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언제까지 유교 탓인가

등록 2023-03-06 18:39수정 2023-03-07 02:40

2016년 3월16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성균관 대성전에서 제관들이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들을 추모하는 제사 의식인 ‘춘기석전’에 참여하고 있다. 음력으로 2월과 8월에 두차례 열리는 석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돼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6년 3월16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성균관 대성전에서 제관들이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들을 추모하는 제사 의식인 ‘춘기석전’에 참여하고 있다. 음력으로 2월과 8월에 두차례 열리는 석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돼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20여년 전 전설적 베스트셀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발간된 이래, 한국은 아직 전근대적 유교 문화에 사로잡혀 있으며 오늘날 많은 문제가 유교 때문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래도 그렇지 근래에 들은 두가지 이야기는 해도 너무하다.

첫째는 <한겨레> 기사 ‘‘인구절벽’ 유독 심한 동아시아 국가들, 왜 그럴까’에 인용된 연구 결과들이다. 최근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한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초저출산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들은 그 이유로 이 지역이 공통적으로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지역에서 유교는 종교이자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작용해왔으며, 유교에서 비롯된 엄숙주의 성 관념, 엄격한 성 역할 구분, 학력주의 등이 저출산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임건순 작가의 <조선일보> 인터뷰다. 그는 한국 사회의 내면에 “유교적 중세”, “무속의 고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전근대성이 한국의 “진보좌파”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명분에 함몰된 지적 전통과 고립적 세계관 같은 많은 한국병의 뿌리는 유교”이다.

유교를 통해 동아시아 사회를 설명하려는 지적 전통은 꽤 유구하다. 계몽주의 시대 일부 서양 지식인들은 청 제국의 번영 원인을 유교에서 찾으며 그 합리적 종교성이나 과거제도 등을 유럽에 이식하려 했다. 반면 근대의 사회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유교를 지목했다.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 윤리가 근대적 자본주의를 촉진한 반면, 유교는 그것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다 20세기 후반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자, 이번에는 유교문화가 이 지역 경제발전의 원인이라는 “유교자본주의론”이 대두됐다. 왜 유교는 동아시아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쇠퇴시키기도 하는 걸까?

유교를 비롯한 종교문화가 정치,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종교가 사회변화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본다. 다만 그런 인과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고려할 것들이 있다.

예상되는 반론부터 처리하며 논의를 이어가자. 유교를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종교, 문화, 철학 같은 근대적 개념들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이것은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유교는 그 모든 것에 해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를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유교는 종교에 포함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종교는 고정된 본질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특정한 현상들을 분류하기 위해 고안해 낸 범주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우주론과 신념, 행위 양식, 제도들을 포함하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종교 범주에서 다뤄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전통은 스스로 일관되고 단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이질적이고, 잡다하고, 심지어는 모순적인 요소들의 집합체이다. 역사가 오래된 종교일수록 그런 경향은 심해진다. 그리스도교는 흔히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와 친화성을 가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극우인종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아나키즘, 생태주의 등 다양한 사상들이 그리스도교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 전통 속에는 금욕주의적인 수행으로부터 개인의 복을 바라는 대중적 신앙에 이르는 다양한 실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들이 가득하다.

왜 유교는 그렇지 않겠는가? 분명 성차별, 부계 혈통주의, 신분제, 도덕주의 등은 유교를 통해 합리화돼왔다. 그러나 방대한 유교 전통 체계 속에서 그런 억압적인 세계관을 뽑아내 이용한 것은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인간 집단이다. 만약 그럴 필요나 동기가 있다면, 우리는 유교 전통으로부터 평등주의적 인간관, 가족에 대한 대안적인 아이디어, 대동사회를 모델로 한 사회변혁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저출산 원인으로 유교를 지목하거나, 특정 정치세력을 유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게으르다. 유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의 대상을 전통 자체가 아니라 낡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전통을 이용해온 사람들에게로 옮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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