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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백신 피해자의 눈물…버려진 법치, 어물쩍 정치 [세상읽기]

등록 2023-03-02 18:56수정 2023-03-03 02:38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백신피해 관련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백신피해 관련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21년 2월26일을 시작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2년 넘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의료기관 등이 신고한 예방접종 뒤 이상반응은 사망 수천건을 포함해 약 50만건, 피접종자 등이 예방접종 피해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약 10만건에 이른다. 이들 중 소수만이 보상이나 지원을 받았고 대다수는 여전히 피해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법치, 공정, 상식에 부합할까.

감염병예방법상 피해보상을 위한 백신 접종과 피해의 일반적인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2014년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법리가 있다. 대법원은 예방접종의 사회적 유용성과 국가 차원의 권장 필요성, 예방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사회적 특별손해에 대한 상호부조와 손해분담, 부작용 발생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 부족 등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회정책적 요소들에 기초해 대법원은 예방접종 피해보상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요건 아래 규범적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즉, ①예방접종과 장애 등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공간적 밀접성이 있고 ②피해자가 입은 장애 등이 당해 예방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 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으며 ③장애 등이 원인 불명이거나 당해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이 있으면, 예방접종과 장애 등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역대 어떤 백신보다도 단기간에 개발되고, 완화된 승인, 허가 심사를 거쳤기 때문에 그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또 당국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이상반응 양상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상당 기간 단순한 권유를 넘어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상황이 지속했다.

정부는 시간적 개연성이 있고 관련성이 의심되는 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인과성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면 인과성을 부정한다. 다만 법적 근거 없이 보상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부분적 지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대응은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에 반한다. 인과성 인정 요건을 너무 좁게 해석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변호사협회 발표나 질병관리청이 의뢰한 한국사회보장법학회의 연구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정부는 피해가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는 아예 지원 대상에서조차 배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달리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소위에서 대법원 판례를 사실상 그대로 가져온 법안을 두고, 질병관리청 국장은 그 규정에 따르면 소송 대응이 어렵고 그 기준대로 보상하면 과다보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관련 질의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과학”이라는 표현을 다섯번이나 써가며 태도 변화 가능성을 강력하게 부정했다. 이들 모습에서 법치주의의 부정, 이를 이해하거나 지키려는 의사나 능력의 부재, 수많은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본다.

국회에서는 재작년부터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살리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상당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전향적인 인과관계의 추정이나 입증 책임의 전환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법안들이다. 지난해 초 국회 보건복지위 제2법안소위에서는 계속해서 소극적인 태도만 보이는 질병관리청에 맡길 게 아니라 여야 의원들이 소소위원회를 구성해 단일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1년 가까이 아무 소식이 없더니, 지난해 말 여야 단일안 얘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질병관리청이 안을 마련해 올 것을 결의했다.

사회정책적 접근, 규범적 접근을 통해 확립된 법 기준에 못 미치거나 혹은 이를 부정하는 법 집행을 방관하는 국회는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피해자를 시혜나 위기관리 대상으로 간주할 때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쓰러진 법치를 세우고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정당한 용기를 발휘하는 정치가 그렇게도 힘든가. 정부와 국회의 스스로의 책임에 대한 무지나 부인, 회피 속에서 수많은 백신 피해자들의 고통과 울분이 매일매일 무겁게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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