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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알레고리의 여왕

등록 2023-03-02 18:56수정 2023-03-03 02:33

<더 크라운> 시즌4 포스터 갈무리. 넷플릭스 제공
<더 크라운> 시즌4 포스터 갈무리. 넷플릭스 제공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내가 올리비아 콜먼의 팬이 된 것은 오래전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 이미숙을 보고 하층 인물을 위화감 없이 연기하는 배우야말로 훌륭한 배우라는 소박한 편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콜먼은 그런 편견에 부합하는 배우였다. 그럼에도 그의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드라마 <더 크라운>은 소재나 분량 때문에 선뜻 눈이 가지 않다가 결국 마음이 바뀌었다. 이 드라마가 인물의 연령대에 따라 배우를 바꿔서 콜먼은 두 시즌에만 출연한다는 걸 알게 됐고, 또 마침 그 시즌이 대처의 집권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대처 하면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철의 여인>(콜먼이 대처의 딸로 나왔다)이겠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더 크라운>에서 대처는 일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권력을 얻지만 나는 그러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합니다.” 즉 “삶의 모든 면을 경제화한다”는 신자유주의의 목표를 몸으로 구현한 듯, 일이 사람인 인물이다. 따라서 일이라는 맥락을 약화하면 대처라는 인물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고, 실제로 <철의 여인>은 대처를 맡은 메릴 스트립의 세심한 탐사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넘는 깊이가 드러나지는 않는 느낌이다. 대처 자신이 쉽게 신념이나 관념으로 환원될 수 있는 인물, 뭔가의 알레고리로 느껴질 듯한 평면적 인물인 탓일 것이다.

<더 크라운>은 대처의 대척점에 다른 알레고리적 인물인 엘리자베스를 앉혀 놓는다. 잡화점 딸과 왕의 딸로서 영국 사회의 정점에서 만난 동갑내기 두 여성의 대립인 셈이다. 대처는 자기 신념의 육화로서 타고난 알레고리이지만, 여왕은 이 드라마에서 대처와 대척점을 이루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제시된 알레고리다. 이 여왕은 1974년 광산 파업으로 정전 사태가 벌어졌을 때 광부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또 “그들을 인간으로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수당 총리 에드워드 히스(1970~74 재임)를 질책한다. 노동당 총리 해럴드 윌슨(1974~76 재임)은 퇴임하면서 여왕에게 늘 여왕이 속으로는 좌파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총리와 왕실 좌파의 대립이라는 구도의 토대가 마련된다.

대처와 여왕의 만남은 주로 알현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둘의 대립에서는 알레고리 대화극의 느낌도 난다. 가령 대처가 취임한 3년 전보다 실업률이 두배로 늘어난 점을 여왕이 지적하며 실업자를 돕는 것이 “공동체의 의무” 아니냐고 하자, 공동체나 사회라는 말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신자유주의의 대변자 대처는 그게 “낡고 오도된 관념”이라고 발끈하며 오직 개인,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자기 이익을 챙겨 성공하고, 그런 뒤에, 선택에 따라 이웃을 챙기기도 하는 것”이라는 대처의 공적 신념은 “나에게 사람들의 동정만큼 모욕적인 것은 없다”는 입지전적 개인 체험과 결합해 있고, 대처를 맡은 질리언 앤더슨은 둘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이 인물이 낼 수 있는 감정의 최대치를 표현한다. 머릿속에 사회라는 매개가 없기 때문에 사회보장의 문제를 개인적 동정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이런 궤변에 여왕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지만 콜먼은 그 표정만으로 알레고리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준다. 좌파 여왕에 콜먼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어디 있을까.

물론 이런 대립이 실재했다고 믿을 사람은 드물겠지만 실재했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 소망이 결국 이 드라마의 알레고리가 설득력을 얻는 지점일 텐데, 그들을 위해 알레고리의 여왕은 헌법적 의무를 어겨 가며 언론에 정치적 의견을 흘린다. “분열을 일으키는” 총리의 정책이 “이 나라 사회 조직에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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