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는 정순신 아들이 아니라 정순신 문제이고, 정순신을 임명·검증·추천한 윤석열·한동훈·윤희근 문제다.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관계 파악-책임자 문책-재발방지책 마련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윤석열·한동훈·윤희근은 이 세가지 중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몰랐다’,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만 무한 반복한다. 비겁하다.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 학교폭력 전력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낙마했다. 임명 당일인 24일 <한국방송>(KBS)은 9시 뉴스에서 ‘정순신 ‘학폭 가해 아들’ 소송에 가처분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날 정 변호사는 스스로 물러났다. 언론이 권력 감시라는 ‘제4부’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라 본다.
이번 사건은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아니다. ‘아버지의 집요한 학교폭력 가해 소송’ 사건이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개인 문제였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으로 정부의 ‘인사검증 실패’ 사건이 됐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법정대리인이었던 정순신 변호사는 2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부모로서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했지만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보겠다”고 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피해 회복’이 학교폭력 가해자인 자기 아들의 ‘피해’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정 변호사는 5년 전 <한국방송>이 이 사건을 보도할 당시, “피해 학생 부모에게 서면으로 사과했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소송을 낸 이유에 대해 그는 “당시에는 변호사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국가수사본부장직을 신청하면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에 있는 ‘본인이나 배우자, 직계 존비속과 관련한 소송 유무’에 대해 기재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그리고 물러나면서 내놓은 입장문에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입니다”라고 썼다. 이게 검찰 출신의 보편적 인식인가. 이런 판단력과 인식, 인성을 지닌 사람에게 ‘칼’을 쥐여주면 안 된다.
정 변호사는 공식적으로 윤희근 경찰청장이 추천했다. 윤 청장은 27일 현 사태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정 변호사를 “사전에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추천한 데에는 ‘대통령실과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는 질의에 “의견 교환을 통해 적격자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찰청은 인사검증 권한이 없다. (법무부로부터) 결과를 받을 뿐”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을 추천했고, 인사검증 권한도 없으니, “안타깝다”는 말이 윤 청장의 심사를 가장 정확히 표현한 단어일 수 있겠다.
인사검증 책임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7일 “정무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책임감을 갖고 더 충실하게 일하겠다”고 했다. ‘책임’은 느끼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지난해 5월 공직자 인사검증을 맡을 인사정보관리단을 법무부에 신설해 민정수석실 업무를 가져올 당시 한 장관은 “투명성과 객관성이 높아질 것”이라 했다. 한 장관은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제가 몰랐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왜 이렇게 말을 이상하게 할까.
대통령실은 이렇게 말한다. “장관급 인사청문회를 하는 자리도 아니고, (인사검증) 인책으로 다룰 것은 아닌 것 같다”, “문제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시정하는 노력을 했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연좌제와 충돌하는 건 아닌지” 등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통령실 관계자를 표창해야 할 것 같고, 문제 삼는 사람이 문제인 것처럼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교육부 장관에게 학폭 종합대책을 주문했다. 조만간 ‘건수’ 올리느라고, 갑자기 과도한 처벌 일변도로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윤 대통령은 국민들이 화를 내야 할 때, 본인이 먼저 화를 낸다.
이 문제는 ‘학폭’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정순신 아들’이 아니라 ‘정순신’ 문제이고, 정순신을 임명·검증·추천한 윤석열·한동훈·윤희근 문제다. 정치인 궤변을 듣다 보면 두 가지 중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이 사람 바본가’ 아니면 ‘누굴 바보로 아나’이다.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관계 파악-책임자 문책-재발방지책 마련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윤석열·한동훈·윤희근은 이 세가지 중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몰랐다’,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만 무한 반복한다. 비겁하다. 몰라도 책임져야 하고, 무능해도 책임져야 한다.
한편, 이번 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낸 <한국방송>은 5년 전 소송 진행 당시 이를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인 정순신 변호사를 ‘한 검사’로 보도했다. 피해 학생을 상대로 소송전을 펼치는 사람이 ‘인권을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게 합당한지 좀 더 들어갔다면, 그리고 2019년 4월 대법원 최종 판결 때 언론들이 좀 더 추적보도 했다면, 국민들이 5년 뒤 이 꼴은 안 봐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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