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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석기의 과학풍경] 가뭄과 인간사회의 성쇠

등록 2023-02-28 18:23수정 2023-03-01 02:34

히타이트 제국 고르디온에서 발굴한 향나무의 나이테 폭을 나타내는 그래프. 기원전 1275~1125년 150년의 데이터로 기원전 1198~1187년 12년 동안(보라색+회색) 건조했고 특히 기원전 1198~1196년 3년 동안(보라색) 가뭄이 극심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기간 제국이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네이처> 제공
히타이트 제국 고르디온에서 발굴한 향나무의 나이테 폭을 나타내는 그래프. 기원전 1275~1125년 150년의 데이터로 기원전 1198~1187년 12년 동안(보라색+회색) 건조했고 특히 기원전 1198~1196년 3년 동안(보라색) 가뭄이 극심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기간 제국이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네이처>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물은 지나친 게 모자라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홍수로 큰 피해가 나기도 하지만 가뭄이 극심해지면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인류사에서 여러 문명이 극심한 가뭄 속에서 폐허로 변해 잊혔다.

예를 들어 5000여년 전 시작된 인더스 계곡 하라파의 도시 문명은 커다란 하천 수로를 따라 1000년 넘게 번성했지만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면서 쇠락해 결국 사라졌다. 고기후학자들이 이 지역의 과거 기후를 분석한 결과, 약 4100년 전부터 여름 몬순이 급속히 줄어들어 무려 200년 동안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 역시 가뭄으로 무너졌다. 유적을 보면 마야인들은 물 관리 능력이 뛰어났지만 서기 750년 무렵부터 무려 300년에 걸친 지속적인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흩어졌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고대 지중해 청동기 시대를 이끌던 히타이트제국 역시 혹독한 가뭄이 소멸의 주요 원인이었음을 시사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오늘날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걸쳐 500여년 동안 번성한 히타이트제국은 기원전 12세기 초 붕괴했는데, 그 원인은 미궁이었다.

코넬대 고고학연구소 등 미국 공동연구팀은 히타이트 수도 하투샤 서쪽의 도시 고르디온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향나무 23점의 나이테를 분석해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800년 사이 강수량 변화를 분석했다. 물이 부족하면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나이테 사이 폭이 좁다. 분석 결과, 기원전 1198년부터 12년 동안 성장이 부진했는데, 특히 앞의 3년 동안 가뭄이 극심했던 것으로 나왔다. 다른 시기에도 몇차례 이 정도 가뭄이 있었지만 1년에 그쳤다. 저자들은 1198년부터 1196년까지 이어진 극심한 가뭄이 제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추측했다. 연도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추정한 값으로 오차범위는 3년이다.

오늘날도 가뭄은 여전히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물론 과학과 공학의 힘으로 고대인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대응도 하지만(예를 들어 150여 나라에서 해수담수화 설비로 매일 1억톤 가까운 민물을 만들어 3억여명에게 공급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인구 증가로 지구촌 많은 지역에서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들어 긴 건기와 짧은 우기로 강수 패턴이 바뀌고 지역에 따라 강수량이 큰 편차를 보인다. 지난해 비가 적게 온 남부지방은 가뭄이 길어지며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

해수담수화 기술이 있다지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생활용수나 농업용수까지 공급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빗물을 담는 저수조 증설, 누수 노후관 교체, 수세식 화장실 물을 샤워, 설거지, 세탁 과정에서 나오는 ‘그레이워터’로 재활용하는 시스템 도입 등 다각도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재배 과정에서 물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현재 남아도는 벼 대신 가뭄에 강하고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밀을 심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물론 개인들도 물을 아끼는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한다. 아울러 언론도 ‘물처럼 쓴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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