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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선 뒤 1년, 재도약의 희망 [세상읽기]

등록 2023-02-28 18:21수정 2023-03-01 02:36

시민단체 촛불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1월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촛불대행진 개최 계획을 알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시민단체 촛불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1월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촛불대행진 개최 계획을 알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대선 뒤 1년이 지났다. 불행히도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한 일로 기억되는 것은 수많은 검찰 조사와 전 정권 때리기, 노조 때리기, 파업 노동자 때리기, 시민단체 때리기뿐이다. 경제, 복지, 노동, 외교, 안보, 남북관계, 기후위기 등 중대한 국가적, 세계적 의제들에 관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정권의 능동적 국정비전과 목표, 로드맵을 들은 바 없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계급, 이념, 권력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조명해본다면, 반노동·극우·검찰국가의 면모가 점점 분명해졌다. 노동자들의 단체와 권익주장에 대한 탄압, 극우 인사들의 고위공직자 등용, 민주화 역사 부정, 검사 출신들의 국가기관 장악, 사정기관 권력을 남용한 사회통제 등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을 위협하는 여러 심각한 문제가 빠르게 심화하고 있다.

법을 수단으로 하는 감시와 처벌의 지배양식이 국가기관과 사회조직, 노동 현장, 나아가 시민들의 내면세계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 아마도 현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일 것이다. 법을 알고 부릴 줄 아는 법기술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자,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사회 모든 부문의 권력자원을 손에 넣고 있다. 검사, 판사, 변호사, 정치인, 관료, 기업이 법과 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특권의 성을 더 높이, 더 견고히 세우고 있다.

그 같은 사법지배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이 이념적 낙인찍기와 도덕적 상처 입히기의 지배기술이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을 대거 동원해 ‘노조 간첩’ 수색 작전을 벌이고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것, 노조와 시민단체 회계장부를 모조리 들여다보고 처벌하겠다고 선포하는 것 등은 모두 정권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적, 범죄, 부패의 이미지를 덮어씌워 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지배 행위들이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자유’와 ‘공정’의 실상이다.

이런 정치상황은 인권과 복지, 관용, 대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들을 전면적으로 위협한다는 점에서, 진보냐 보수냐의 차원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위중함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퇴행을 저지하고 대안을 제시할 세력과 리더십이 뚜렷이 보이지 않고, 사회 전반에 답답함과 무력감이 팽배해 있음이 감지된다.

우리 사회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역사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국면을 절대화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역사적 주기 속의 하강 국면으로 현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세계적 석학들은 민주주의, 계급관계, 사회운동, 시민권력 등 여러 면에서 진보와 퇴보가 반복되는 장기파동을 발견해왔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하강기에 접어든 원인을 분석하고 재도약을 위한 조건과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 진보·개혁세력의 중요한 집합적 과제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이르는 시기 진보정치와 시민사회가 초토화됐다는 패배감이 만연했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중앙과 지방의 행정·입법권력을 모두 보수에 몰아주면서 한국 사회에 이제 국민적 지지기반을 가진 장기보수지배와 우경화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집회는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수많은 시민 공동체와 새로운 사회운동이 사회 곳곳에 생겨나면서 새로운 역사 주기가 개시됐다. 보편·선별복지 논쟁, 무상급식 운동, 희망버스, 대학가의 안녕들하십니까 캠페인 등은 모두 이 상승기 흐름 속에 나왔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노선과 정책, 인적 구성에서도 진보적 색채가 강해졌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왜 2016~17년의 촛불과 탄핵은 새 시대의 개막이 아니라 한 시대의 종료를 의미하게 됐는가다.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우익의 거센 역공만 계속됐고, 진보적 시민사회는 페미니즘 운동을 제외하면 대체로 무기력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민심과 점점 멀어졌고,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권만도 못한 세력에게 정권교체를 허용했다.

이런 여러 면에서 지금 바뀐 것이 있는가? 윤석열 정권에 대한 대안 없는 울분만 반복되는 동안에 우리는 어쩌면 2016년으로 되돌아가 있는지 모른다. 그런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 상승기를 개시해 밀고 올라가는 것, 윤석열 정부의 남은 4년 동안 우리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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