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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동훈 장관처럼 박민식 처장도

등록 2023-02-27 19:23수정 2023-02-28 02:38

새해 업무보고를 마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행안부, 국가보훈처, 인사혁신처 합동브리핑에서 2023년 보훈처 중점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업무보고를 마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행안부, 국가보훈처, 인사혁신처 합동브리핑에서 2023년 보훈처 중점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이주현 | 이슈부문장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사이에 작은 설전이 벌어졌다. 한국전쟁 때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곽동의가 왜 보훈보상금을 받지 못하냐는 김 의원 질문에 박 처장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며 논쟁이 시작됐다.

곽동의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지정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민통, 한통련의 전신)에서 활동한 것을 박 처장은 문제 삼았다. 군사독재 정권 때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연대해 일본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한민통은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간첩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조직이다. 신군부가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도 ‘한민통의 수괴’라는 혐의가 붙었다.

김 의원이 “박정희 정권 때 김대중에게도 유죄 혐의를 씌우지 않았냐”며 친김대중 활동 한 분한테 친북의 굴레를 씌워서 국가유공자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박 처장은 “곽동의와 김대중 케이스는 전혀 맞지 않는다. 자신이 부정하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유공자 인정을 받아 보상금 받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맞섰다. 결국 정무위 야당 쪽 간사인 김종민 의원이 “한 사람의 명예나 정체성을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며 다시 근거를 따져보자고 중재에 나서며 논쟁은 마무리됐다.

이날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으나, 사실 이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어긋난 법과 정의’라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곽동의와 한민통에 색깔론이 씌워진 것은 1970년대 곽동의가 방북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자수간첩 윤효동’의 거짓주장과 김정사 간첩조작 사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효동이 곽동의를 북한에 데려갔다고 주장한 시기에 곽동의가 일본에 있었다는 물증이 확인됐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김정사 간첩사건이 수사기관의 강압으로 조작됐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근거해 김정사 또한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정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한민통은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명확히 판시하지 않았고 이에 한민통에 붙은 빨간딱지는 말끔히 떨어지지 않았다.

법적인 낙인은 씻겨지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 곽동의는 정치적으로 복권된다. 한-일 회담 반대 운동으로 입국이 금지됐던 그는 2004년 40여년 만에 고국을 찾아 김대중을 만났다. 이듬해엔 6·25 참전을 증명하는 서류를 갖춰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고 보훈처는 이를 받아들여 2006년부터 매달 100만원가량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7월부터 보상금 지급은 끊기고 만다.

보훈처는 지급 중단 사유로 ‘품위유지 의무 위반’ 규정을 들고 있지만, 곽동의는 국가유공자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공식적으로 판단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국가보안법을 반하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경우 보상금 지급에서 제외하도록 했지만, 곽동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실이 없다.

보훈처의 판단엔 그해 6월 말 <조선일보> 보도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굴 위한 보훈인가 ― 6·25 참전 용사에겐 월 9만원 반국가단체 간부에겐 월 1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로부터 13년이 흘렀지만 <조선일보>는 변함없다. ‘반국가 활동한 인사에 보훈지원 중단…야 의원 “재심사해야”’(2023년 2월23일치)라는 기사로 다시 한번 ‘한민통=반국가단체’임을 주장했다.

지난해 6월 법무부는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인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 이창복을 상대로 초과 지급된 국가배상금을 반환하라며 물렸던 9억6천만원의 이자를 포기했다. 원금 5억원만 받으라는 법원 권고를 받아들여 ‘빚 고문’을 중단한 것이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는 오직 팩트·상식·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고,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에 진영논리나 정치논리가 설 자리는 없다.”

‘품위유지 의무’ 규정을 엉뚱하게 적용해 보훈보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보훈처에도 이 말을 돌려주고 싶다. “팩트·상식·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해달라. 진영논리나 정치논리를 동원하지 말아달라.”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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