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언어모델에 대한 과도한 거품은 걷어내야 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2022년 11월30일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 같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오픈에이아이(AI)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지피티(ChatGPT)를 선보인 날이기 때문이다. 챗지피티는 공개된 지 2개월 만에 사용자 1억명이 몰려들었다. 더 놀라운 건 당시 공개된 챗지피티가 3.5버전이고, 기능이 더 향상된 챗지피티4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챗지피티 공개와 더불어 몇몇 논란이 일었다. 그중 챗지피티의 답변에 ‘오류’라고 볼 수도 없는 ‘거짓말’에 가까운 것들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대다수 일반인은 인공지능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리 없다고 믿거나, 그 정보가 잘못됐다면 데이터 부족이나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챗지피티가 내놓는 답변을 보면 단지 데이터 부족이나 오류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챗지피티는 여간해선 데이터가 부족해서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이란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으로 치자면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답변을 지어낸다. 예를 들어, 챗지피티는 이 칼럼을 쓰는 장본인인 정치철학자 김만권이 <미국정치사상> <한국정치사상의 전개> 등을 썼고,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고 답한다. 써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책과 일이다.
물론 우리말 데이터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데이터 축적만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챗지피티가 정보의 ‘정답’을 찾는 대신 정보 간 ‘관계성’을 분석해 답해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데이터가 축적돼 챗지피티의 답변이 정확해질수록 그의 거짓말은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개선돼야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인간은 거짓말을 해도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거짓말은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챗지피티의 등장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은 학교교육 현장이다. 학기 개강 전 만난 교수들 대다수가 챗지피티가 만들어낸 과제물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미국 대학에서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여러 교육기관이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챗지피티의 등장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교육의 본질이 ‘지식’이 아니라 ‘정직’이라는 사실을 환기했다. ‘교육의 수준’이 ‘소득의 수준’과 직결되는 사회가 돼가며 학교 현장은 ‘지식의 주입’이 목적인 곳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챗지피티는 학교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인공지능이 지식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면 학교교육이 전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 지식을 쓰는 자세와 가치일 것이다.
한편으로 챗지피티는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 자체에도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암기식 교육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암기식 교육이 중요해진 것은 실제 얼마 되지 않았다. 인도 출신 세계적인 컴퓨터·교육공학자인 수가타 미트라는 2013년 ‘구름 속에서 학교 짓기’란 테드(TED) 강연에서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는 종류의 학습의 기원을 대영제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 컴퓨터’가 필요했던 대영제국이 관료주의적 행정기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천편일률적 암기식 학교교육이 중요해졌다. 제국의 통치를 위해 관료들이 세계 어느 곳에 배치되든 상관없이 즉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질문하지 않고 암기하는 교육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트라는 이제 이 기능을 사무실에서 컴퓨터가 더 잘 수행할 수 있기에 교육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선구적으로 고민한 철학자 김재인의 지적은 매우 의미가 깊다. “우리 사회는 문제제기를 하면 이야기를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문제제기를 많이 하는 것을 서로 권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학교교육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챗지피티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챗지피티가 제공하는 정보의 질이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조금은 낯설지만, 질문하는 사람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