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호박>, 1994, 200×250×250㎝, 일본 나오시마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그녀의 부모님은 일본에서 원예 농업을 했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줄기로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에 말을 걸며 그녀는 공상에 빠지곤 했다. 그런 그녀를 엄마는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순종하고, 정해주는 대로 생각하지 않던 어린 그녀는 종종 먹을 것 없는 창고에 갇혀 지냈다. 눈을 뜬 시간이 고통스러워 차라리 잠을 청했다. 꿈을 꾸며 환상을 키웠다. 열 살 무렵부터 온통 점으로 가득한 환각을 보기 시작했고, 그녀는 보이는 대로 점박이 세상을 표현했다.
그녀는 “나, 쿠사마 야요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세상은 쿠사마 야요이(1929~)를 강박신경증을 가진 예술가라고 규정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처음 이론으로 체계화한 강박신경증은 유아 시절의 고립이나 방임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거부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신경증을 유발할 수 있고, 신경증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반복행위를 하게 된다고 정신분석학에서는 설명한다.
강박적인 반복은 쿠사마에게도 증상처럼 나타났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 꽃잎의 세포벽을 닮은 그물망을 화면 가득 그리기도 하고, 둥근 점을 끝없이 찍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못마땅해 그림을 갈기갈기 찢는 엄마에게 맞서듯 엄마를 그리며 얼굴 가득 점을 그렸다. 그리는 행위는 고통 속 그녀를 살게 하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그녀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떠난 건 20대 후반이었다. 낯선 땅 뉴욕에서 쿠사마는 마음껏 원을 그렸다. 밖으로부터의 억압과 그로 인한 내적 고통을 표출하는 일종의 치유 행위였다.
쿠사마에게 원은 세계였다. 수많은 별 중 하나인 지구를 닮았고, 우주 속 한 점에 불과한 자신을 닮기도 했다고 쿠사마는 생각했다. 고대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가장 아름다운 평면 도형으로 원을 꼽았듯, 둥근 원은 뾰족한 불안을 잠재울 가장 완벽한 안식으로 쿠사마에게 의미됐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닮은 원은 그녀의 환각을 지배했다. 원이 가득한 세상을 평면에 그리다 아예 사물에 원을 그려 넣었다. 쿠사마가 그리는 원은 무한증식해 전시장 밖 공간으로까지 확장됐다.
세상은 이제 쿠사마가 보는 환영처럼 쿠사마의 원으로 가득하다. 쿠사마의 시선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일본의 나오시마 섬이다. 섬에 닿으려면 우선 동그라미 무늬가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배를 타야 한다. 배에서 내려 동그라미가 잔뜩 그려진 버스로 옮겨 타면 부둣가에 이르게 된다. 부두를 차지하고 있는 건 엉뚱하게도 거대한 노랑 호박이다. 크고 작은 검은 원이 줄무늬를 이룬 2미터 높이의 호박 조각은 부두 풍경을 특별하게 만든다. 엉뚱해서 특별한 풍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쿠사마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호박을 공공조각으로 설치했다. 호박은 무한증식하는 원만큼이나 예술가 쿠사마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왜 호박이었을까 궁금한데, 우리로 치면 줄을 그어도 수박이 될 수 없다고 무시 받는 호박이 쿠사마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비정상으로 취급받던 아시아 출신의 비주류 여성 미술가가 남들과 다른 눈으로 호박을 발견한 셈이다. 천덕꾸러기 호박은 세상을 매혹하는 예술로 거듭났다.
최근 찾았던 나오시마 부둣가의 호박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웃음 짓게 하는 힘은 비정상이라고 규정됐던 특별함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자신의 시선을 잘 알고 있다. 도쿄의 정신병원 앞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병원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여전히 세상을 향해 원을 그린다. 자신의 안식을 구하고자 했던 행위는 이제 세상의 잣대로 억눌린 존재들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