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30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신드주 시카르푸르의 홍수 피해 지역에서 한 수재민이 집에서 건져낸 가재도구를 옮기고 있다. 시카르푸르/AP 연합뉴스
[세상읽기]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1월30일, 미국 스탠퍼드대와 콜로라도주립대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지구 기후모델을 시뮬레이션한 결과가 발표됐다. 지금부터 전세계가 탄소배출을 줄이려 얼마나 노력하는지와 상관없이 2033~2035년 사이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다. 이대로 간다면 2030년대 중반 전후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던 2022년 2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2실무그룹 보고서(제2그룹 보고서) 내용과 비슷하지만, 좀 더 충격적이다. 지금부터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 10년쯤 뒤엔 1.5℃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연구진은 파리협정의 목표였던 1.5℃가 아니라, 2.0℃ 상승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미 1.5℃ 상승을 막을 시점은 지났다는 의미다. 2021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1℃ 높았다. 0.4℃ 더 올라가는 데 불과 10여년의 시간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구 전체 온도가 1.5℃ 오르면 우리나라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제2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한 해 태풍 피해가 최대 17조원에 달하며,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조개는 자취를 감추고 어류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 중 홍수 위협을 가장 크게 받을 것이며, 부산 인천 울산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피해를 보기 시작한다.
어디 이뿐일까?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세계 식량 생산은 10%씩 감소한다고 한다(데이비드 월리스웰스, <2050 거주불능 지구>). 가뭄과 산불, 홍수와 태풍,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는 농경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는 식량의 80%를 수입해 와야 한다. 그런데 지구 전체 식량 생산이 줄어들면 식량 수입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먹거리 가격은 점점 더 치솟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는 남부에서는 가뭄으로, 중부에서는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2020년에는 54일 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런 기상이변이 한 해가 아니라 해마다 계속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 대비 농가인구 비중은 4.3%로 독일 미국 일본 등에 비해 훨씬 적고,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은 67.2살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업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데, 점점 더 많은 농민이 농업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제2그룹 보고서 전망대로 어류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어민들도 어쩔 수 없이 바다를 포기해야 한다. 나라 안팎에서 식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밥상에서부터 양극화는 심각해질 것이고 사회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충격은 ‘폼페이 최후의 날’처럼 오지 않는다. 어느 날 화산이 폭발해서 인식조차 못하는 사이에 다 같이 한꺼번에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거라면 우리는 위기를 완화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날짜만 모를 뿐 모두 죽을 테니까.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잦은 기상이변이 재난을 일상화하고, 되풀이되는 재난 속에서 기존의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사회의 토대가 무너져 내리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시스템이 하나둘 마비돼가는 그런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당장 지금부터 기후위기가 가져올 구체적인 위험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고 적응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과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뉜다. ‘2050 탄소중립’처럼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것은 위기 완화를 위한 노력에 해당한다. 이미 닥친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것 또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기후위기가 야기할 위험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추출해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야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3월 중으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을 발표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는 기후재난에 대한 적응 계획이 체계적으로 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