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라디오드라마와 오디오북

등록 2023-02-16 18:29수정 2023-02-17 02:06

“공황을 일으킬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는 오손 웰스. 1938년 웰스는 라디오드라마 <우주 전쟁>을 연출했다. 이때 극중 삽입된 화성인 침공 뉴스가 실제 상황으로 오인되어 전국적인 대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은 사건 직후 긴급 사과 기자회견 장면. 위키미디어
“공황을 일으킬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는 오손 웰스. 1938년 웰스는 라디오드라마 <우주 전쟁>을 연출했다. 이때 극중 삽입된 화성인 침공 뉴스가 실제 상황으로 오인되어 전국적인 대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은 사건 직후 긴급 사과 기자회견 장면. 위키미디어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의 생활은 이제 해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돼가고 있다.

“10여년 전 비 내리는 어느 일요일, 런던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친구와 나는 같이 소리 내서 읽을 탐정소설을 찾기 위해 기차역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1932년 도로시 세이어스가 <미스터리 단편 걸작집>을 편찬하면서 붙인 서문의 첫 구절이다. 이 글은 탐정소설 역사에서 중요한 에세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 집에는 없고 극장이나 홀에만 존재했던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친구인 두 여성은 탐정소설을 한권 사온 뒤 서로 읽어 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즉 응접실을 극장 비슷한 것으로 변모시킴으로써 홈엔터테인먼트가 아직 발명되지 않아 생긴 무료함을 달래려 한다. 이를 보면 백년 전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드라마 대본에 가까웠고, 독서는 청취와 별로 구분되지 않는 활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라디오드라마는 바로 그때쯤 태어났다. 1922년 미국인들은 브로드웨이 연극을 라디오로 생중계하다가, 아예 스튜디오에 성우팀과 효과음 담당을 모아놓고 ‘라디오화된’ 연극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라디오용으로 쓴 창작극들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해 편성표에는 스무개 이상 창작 드라마가 있었다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최초의 라디오드라마’ 타이틀은 영국 작가 리처드 휴스가 쓰고 비비시(BBC)가 방송한 <위험>(1924)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드라마는 가끔 비비시에서 새로 제작되기도 한다.

<위험>은 우연히 탄광의 어둠 속에 갇힌 세 남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작가는 라디오드라마를 창조하기 위해 일단은 무대극을 깜깜하게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했던 것 같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물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킨다. 비비시에서는 드라마 시작 전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감상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드라마 속 환경과 감상자의 환경을 일치시키려 한 것이다. 이는 상당히 ‘극장적인’ 통제인데, 연극 시작 전 객석 조명을 끄는 것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신생 장르가 몰입 경험의 제공을 처음부터 자신의 강점으로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은 <탄갱>(炭坑)이라는 제목으로 1925년 도쿄에서, 1935년 경성에서도 방송됐다. 이때도 집의 조명을 끄고 감상해 달라는 요구는 계속됐다.

라디오드라마의 강렬한 몰입 경험은 쉽게 눈에 띄었다. 1950년대 이후 음반들에는 라디오드라마를 흉내낸 효과들이 들어 있다. 이 장르의 문학적인 가능성을 알아차린 독일에서는 기성 작가의 참여가 활발해 뵐이나 뒤렌마트, 바흐만의 방송극집은 70년대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것들은 책으로 읽기 쉽다. 희곡보다 위화감이 덜하다. 라디오드라마는 1960~70년대 텔레비전 보급과 함께 급속하게 퇴조했다. 그 전성기는 딱 50년이었다.

지금 라디오드라마가 다시 문제가 된다면, 이는 스마트폰 덕에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 오디오북 때문일 것이다. 오디오북은 타인의 낭독을 듣는 것인데, 묵독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묵독 역시 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을 듣는 것이니 말이다. 오히려 오디오북의 약점은 청취자의 높은 기대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왜 한사람이 남녀노소 모든 배역을 다 하는 걸까? 성우를 두세명만 더 쓰면 좋지 않을까?

라디오드라마는 방송국의 발명이며, 출판사 예산으로 그걸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알면서도 아쉬움을 갖게 된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무슨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책을 라디오드라마로 듣는 건 영화로 보는 것 못지않게 정말 근사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내란이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벌열’ [.txt] 1.

내란을 내란이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벌열’ [.txt]

[사설] 자신 위해 싸우라는 윤석열의 ‘옥중 정치’, 불복 선동하는 것인가 2.

[사설] 자신 위해 싸우라는 윤석열의 ‘옥중 정치’, 불복 선동하는 것인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양심의 구성’ [강수돌 칼럼] 3.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양심의 구성’ [강수돌 칼럼]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4.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뜨거워지는 북극, 얼어붙는 대륙 [김형준의 메타어스] 5.

뜨거워지는 북극, 얼어붙는 대륙 [김형준의 메타어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