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국방부 장관(가운데)과 김승겸 합참의장(왼쪽),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오른쪽)이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북한 무인기의 우리 영공 침투 사태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1월26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확인된 북한 무인기 사태에서 드러난 군의 무능한 대응을 다시 살펴보자. 우리 군에는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각급 제대와 유관기관이 동시에 상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현대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26일 무인기 출몰 때 군의 고속지령대, 고속상황전파 시스템,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는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그 대신 유선전화로 군단은 군사령부에, 군사령부는 합참에, 합참은 공군작전사령부에 정보를 전달하는 수직적 보고체계만 가동됐는데, 정작 무인기 방어 책임이 있는 수도방위사령부는 이 사실조차 몰랐다. 시스템은 디지털화돼 있는데, 실제 소통은 아날로그식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가 재난 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하기 위해 구축된 국가재난정보망(NDMS)은 참사 직후 전혀 가동되지 않았고, 등산을 간 경찰청장과 숙소에서 휴식하던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이태원 파출소장은 용산경찰서장에게, 경찰서장은 서울경찰청에, 서울경찰청은 경찰청에 보고하기까지 금쪽같은 시간이 허비됐다.
그 이튿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은 이유를 둘러댔다. 이 역시 멀쩡한 디지털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고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소통을 고집하는 관료 행정이 빚어낸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21세기에 이런 현상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왜 군과 경찰은 상하와 좌우가 동시에 같은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는 통합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이미 동시 전파, 동시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데도 말이다.
높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고위직들은 문화적으로 지체된 국가의 위험분자들이다. “나는 보고나 받고 통제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바로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이러니 국가가 아무리 많은 재정을 투입해 시스템을 구축한다 한들 제대로 가동될 리 없다. 시스템이 있는지도 모르고 전화로 보고만 받는 고위직들은 위계 서열의 반석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고 면책되며 권력의 보호를 받는다.
국회의 추궁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1950년대식 “보고 철저”와 “기강 확립” 여부만 따지는 피상적 접근만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와대 위기관리 요원이 뛰어가서 보고했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서 했느냐, 문서로 보고했느냐, 전화로 했느냐는 식의 논란이 이어졌다. 인터넷이라고는 구경도 못 한 저개발국에서나 있을 법한 현상이다. 이런 문화 지체가 최근 재난 사태의 진정한 배후가 아니겠는가.
이 역시 윤석열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3년 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재조사한다며 군의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에서 무단으로 정보를 삭제한 혐의로 전직 국방장관까지 구속하지 않았나. 이런 걸 뻔히 목격한 군인들이 왜 정보통합체계에 유용한 군사 정보를 입력하겠는가. 시스템 관리를 잘못하면 문책당할 판이니 중요한 정보라도 나만 알고 있거나 직속상관에게만 보고하면 그만이다. 나중에 문제점이 적발되면 “심각한 사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둘러대는 게 차라리 낫다. 이것이 군 조직에서의 정보 독점과 보고 지연의 진정한 이유다. 정치 보복을 하니 군인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소신껏 판단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거다. 이에 약이 오른 용산이 “과오자를 색출”한다며 군 하급자들을 윽박지르지만, 문제는 더 악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봄에 서해나 동해에서 남북 간에 국지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국가는 어찌 될까. 비상사태에서도 군 조직은 서로 협조하지 않고 시스템은 여전히 먹통이며 사태 파악은 지연된다. 작전 요원들은 위기 뒤 책임 추궁을 먼저 걱정한다. 대통령과 안보 참모들은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처럼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소위 “엘리트 공황” 상태에 빠진다. 윽박지르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의 위신만 세우는 정치권력의 무능 위에서 마침내 국가는 실패한다. 진정한 위협은 국지전 발생 가능성보다 아무에게나 “적”을 남발하는 강경주의자들의 무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