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7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왼쪽)과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오른쪽).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을 나타낸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지난해 8월 유럽은 공포에 휩싸였다. 천연가스 가격은 메가와트시(㎿h)당 330유로까지 치솟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보다 5배 급등한 수준이었다.
가격보다 더 큰 걱정은 유럽 가스 공급의 35%를 담당하는 러시아가 겨울에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난방이 끊긴 추운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유럽에 팽배했다. 겨울을 맞이한 지금 상황은 어떤가? 난방은 정상 공급되고 천연가스 가격은 메가와트시당 60유로 밑으로 떨어졌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도 8%로 떨어졌다. 따뜻한 겨울 날씨와 액화천연가스(LNG) 해외 수입이 위기를 넘기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정부와 국민의 힘겨운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도움이 됐다. 위기가 예상되자 유럽연합(EU)은 겨울까지 평년 대비 가스 소비를 15% 줄인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정했다. 지금 그 목표는 거의 달성했다. 독일은 14%,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각각 22%와 24%, 스웨덴은 무려 36%를 줄였다. 실내온도를 1도 낮추고 빌딩 복도 난방은 금지하고, 샤워는 2분 이내로 하고 가정 내 사우나는 이웃과 함께 사용하는 등의 노력이 빚은 결과다.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를 1월 난방비 고지서를 통해 이제야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난방비 문제가 전 정부 책임이냐, 현 정부 책임이냐는 엉뚱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엘엔지 수입 가격은 2021년 전년보다 톤당 161달러 상승했고, 2022년에는 다시 톤당 458달러 더 올라갔다. 전 정부가 도시가스 가격 인상을 2022년 초로 미룬 게 맞다. 코로나로 인한 과중한 가계 부담을 걱정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인상 요인 대부분은 2022년에 발생했다. 전쟁이 결정적이었고, 환율 급등,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고가의 현물 엘엔지 도입 증가도 한몫했다. 이런 효과들이 더해져 난방비 상승을 불러왔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누구 탓이냐가 아니라 이 문제가 얼마나 오래갈 것이냐, 그럴 경우 대책은 무엇이냐다. 조심스럽지만 높은 가스 요금은 오래갈 가능성이 꽤 있다. 우리나라는 엘엔지의 약 80%를 장기계약으로 도입하는데, 이때 가격은 국제유가와 연동된다. 따라서 지금처럼 배럴당 80달러 안팎 유가가 지속되면 가스 가격 하락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방역규제 해제로 올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높은 가스 가격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면 난방비 지원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과소비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서유럽이나 일본은 1970년대 석유 파동부터 ‘마른 수건 짜기’ 자세로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지금은 에너지효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100이라고 하면,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은 70 수준이다. 우리와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일본과 독일은 더 낮은 60 수준이다. 거의 모든 오이시디 국가의 1인당 에너지 소비가 감소 추세에 있지만, 우리는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격인데, 우리는 여러 이유로 에너지 가격 인상에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가 현재의 에너지 과소비다.
정부가 물가상승 압력에도 전기요금과 도시가스 가격을 인상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그런데 마지못해 가격을 인상하는 소극적인 대응보다는 가격 인상을 에너지 소비 억제의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위기야말로 국민 동의와 동참을 끌어낼 좋은 기회다.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 규제는 계속 강화되고 높은 에너지 가격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수입액 증가로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올해도 1월 적자만 127억달러다. 경기침체와 연이은 감세 조치로 재정적자 위험도 상당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인상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난방비 재정 지원은 취약 계층으로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는 일시적인 가격 지원보다 장기적인 소비 억제에 도움이 되는 노후 건물 단열 사업 지원 같은 정책이 훨씬 바람직하다. 유럽처럼 정부가 어려운 상황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해 이 위기도 넘기고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