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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인돌봄서비스 직통번호를 아십니까?

등록 2023-02-01 18:47수정 2023-02-02 02:37

언스플래시 제공
언스플래시 제공

[숨&결]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직통 전화번호에 대한 상식적인 질문. 범죄 신고는? 112. 불이 났을 때는? 119.

그렇다면 노인 돌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혹시라도 자신이나 가족의 돌봄에 관해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을 때 전화할 직통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꼭 기억하길 바란다. 정답은 ‘25825001577100025034263555’이다. 사실 그 뒤로도 숫자가 한참 더 있다. 이 문제의 답을 알게 된 사연은 이렇다.

방문진료 중에 만난 말기 암 상태의 할머니. 유일한 보호자였던 아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신청을 해놓고 집에서 며칠째 대기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병동에 자리가 났으니 빨리 입원 수속을 밟으라’는 연락이 왔다.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이었으나 문제가 있었다. 간병인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입원하면 당연히 병원에서 간병인을 연결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환자가 간병인을 구해야 했다. 저 숫자들은 아들 연락을 받고 간병인을 구하기 위해 내가 연락해본 전화번호들의 나열이다. 사설 간병업체는 물론이고 건강보험공단, 대학병원, 시청 복지과 등등. 하다 하다 안 돼 간병 일을 하는 지인에게까지 연락해봤지만 허사였다.

아무리 그래도 정부가 돌봄 민원을 해결해주는 ‘노인돌봄서비스 대표전화’ 하나는 있겠지 싶어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대신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 대표전화만 보였다. 노인을 돌보는 일에 이리 소홀하면서도 아이 돌보는 일에는 나름 진심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노인을 사랑하지 않는 사회는 어린이도 사랑하지 않는 사회다. 어린이의 현재만 사랑할 뿐 어린이의 미래를 사랑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에서 ‘아이돌봄서비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아이를 가족구성원으로 하는 부모라는 여론 형성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인, 그러니까 그 아이의 ‘부모의 부모’는 왜 가족이 아닌 걸까. 한국 노인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치판의 들러리 역할로만 제한돼 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필요를 새로운 의제로 만들어 정치권에 요구하지 못한다. 그저 기존 정치 세력들이 의제화한 사회적 요구들 중 하나에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 노릇을 할 뿐이다.

지난주 만난 한 할머니에게 통증주사를 놓아드린 뒤 불편할 때 연락하시라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하지만 휴대폰 사용에 어려움이 있던 할머니는 열번 넘게 시도하고 나서야 겨우 전화를 걸 수 있었다. 홀몸이던 그 할머니는 자기 돌봄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어디에 어떻게 연락해야 할까. 상상만 해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돌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한 노인들은 정보 접근 능력이 가장 떨어진다. 그런데도 그 정보는 접근 능력이 높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노인들의 정보 접근 능력은 1층에서 헤매고 있는데, 막상 필요한 정보는 100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있는 셈이다.

노인치매검사 항목에는, 길에서 무언가 주웠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질문이 들어 있다. 그 질문은 ‘돌봄서비스를 쉽게 받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된 돌봄 정보를 제공하는 공공 직통번호와 체계가 있어야 하고 ‘돌봄서비스는 무조건 000번’이라는 것이 누구나 아는 상식이 돼야 한다. 최소한 ‘258250…’이라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번호가 정답이 돼서는 안 되지 않는가.

몇 발만 내디디면 숨이 차오를 정도로 몸이 힘들었을 때도 할머니 방은 늘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 몸으로도 방 청소를 거르지 않을 만큼 깔끔했던 할머니는, 간병인 없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들이 자신의 기저귀를 갈아 주고 변을 닦아 주는 걸 감내하다 한달 만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같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시청에서 간병비 10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도, 돌아가신 뒤에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이 안타까운 사실을 차마 알릴 수 없었다. 거동이 가능하던 때 아들 몰래 나를 불러 ‘아들에게 신세 지지 않고 죽게 해달라’던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나는 끝내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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