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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석기의 과학풍경] 코로나19가 열어젖힌 mRNA 백신 시대

등록 2023-01-31 18:51수정 2023-02-01 02:37

오늘날 독감 백신의 80%는 달걀에서 바이러스를 증식해 얻은 항원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매년 달걀 수십억개가 사용되며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다양한 항원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엠알엔에이 독감 백신은 효과가 더 클뿐더러 제조 비용과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오늘날 독감 백신의 80%는 달걀에서 바이러스를 증식해 얻은 항원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매년 달걀 수십억개가 사용되며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다양한 항원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엠알엔에이 독감 백신은 효과가 더 클뿐더러 제조 비용과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월요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풀리면서 2020년 설께 시작돼 꼬박 3년을 끌어온 코로나19 팬데믹이 막을 내리고 있다. 되돌아보면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백신 개발과 변이 바이러스 등장 덕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백신 덕을 본 만큼 백신도 팬데믹의 덕을 톡톡히 봤다.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된 엠알엔에이(mRNA) 백신 얘기다. 인체에서 항원으로 작용할 바이러스 조각이나 단백질로 만드는 기존 백신과는 달리, 엠알엔에이 백신은 바이러스 항원 정보를 담고 있을 뿐, 인체 세포가 이 정보를 해석해 만든 단백질이 항원으로 작용한다.

엠알엔에이 백신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됐고 2012년 독감 백신 동물실험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제품화되지는 않았다. 사람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우려돼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백신에 모험을 걸 제약회사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바이러스가 퍼졌고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코로나19 엠알엔에이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면서 다른 질병을 표적으로 한 엠알엔에이 백신 개발이 한창이다. 단백질(항원)이 아니라 엠알엔에이(항원 정보)를 담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항원의 항체를 유도할 수 있는 백신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독감 엠알엔에이 백신은 무려 20가지 유형을 표적으로 삼고 있어(20가) 동물실험에서 다양한 독감 바이러스에 두루 효과가 있었다. 반면 기존 단백질 백신은 4가 넘게 만들기 어렵다.

매년 2억명 넘게 감염돼 60만명이 숨지는 말라리아는 오랜 연구 끝에 2021년 처음으로 백신이 나왔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 병원체인 말라리아원충은 복잡한 생애주기를 보여 효과적으로 공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학술지 <엔피제이(npj) 백신>에는 원충의 두 단백질 정보를 담은 엠알엔에이 백신이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실렸다.

병원체가 아니라 그 매개체를 표적으로 하는 엠알엔에이 백신도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진드기 침에 들어 있는 19가지 단백질 정보를 담은 엠알엔에이 백신을 접종하면 진드기에 물렸을 때 바로 면역반응이 일어나 진드기가 피를 제대로 빨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며 병원체가 침투할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2021년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실렸다.

엠알엔에이 백신은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넘어 암세포를 표적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암세포 표면에 있는 변이 단백질인 신생항원 정보를 담은 엠알엔에이 백신을 만들어 넣어주면 이를 인식하는 면역세포가 활성화돼 암세포를 공격하는 원리다.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실린 논문을 보면, 기존 항암제와 병행한 결과 진행 고형암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졌다. 개별 환자의 신생항원 정보에 따라 엠알엔에이를 만드는 맞춤 백신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은 지구촌에서 수백만~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이를 계기로 빛을 본 엠알엔에이 백신이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살아나도 대다수는 백신 덕분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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