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조사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 논설위원
별것을 다 가지고 논란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조사 때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이 트집을 잡는다. 이 대표는 지난 28일 검찰 출석 때 33쪽 분량의 서면진술서를 제출한 뒤 검사의 질문에는 그 진술서로 답변을 갈음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엄밀한 의미의 진술거부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진술하지 않고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형사소송법에는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에서는 진술거부 의사를 밝히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멋있으라고 헌법에 써놓은 권리가 아니다. 이 권리가 부정되면 수사기관 앞에서 개인은 인격을 부정당한 채 강압적 추궁의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를 “민주주의의 징표”이자 “고귀한 원칙”이라고 표현했다.
진술거부권 보장은 또 하나의 형사사법 원칙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혐의를 입증할 책임은 오로지 수사기관에 있다는 원칙이다. 수사기관은 당사자를 압박해 진술을 끌어내는 편리한 방식에 기댈 게 아니라,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막강한 수사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한동훈 장관은 이 대표를 향해 “공허한 음모론에, 다수당 힘자랑 뒤에 숨는 단계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팩트와 증거로 말씀하시라”고 했는데, 팩트와 증거를 내놓을 쪽은 수사 대상자가 아니라 수사기관이다.
이런 원칙들에 비춰 보면, 검찰이야말로 1년4개월 수사를 통해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이 대표에 대한 처분을 내릴 단계가 이미 지난 듯하다. 지금 상황에서 소환조사를 반복하며 수사를 끄는 것은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보여주기식 수사라는 인상만 준다.
실제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그런 지적을 받았다. 이 대표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기소하면서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공소장에는 기소된 혐의 사실 이외에는 사건에 대한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어떤 내용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중대한 원칙이다. 그런데 검찰이 제출한 19쪽 분량의 공소장 중 혐의 사실은 3쪽에 그치고, 나머지는 김 부원장과 이 대표의 관계 등 불필요한 전제 사실로 채워졌다. 법원은 지난 19일 재판에서 “공소장에 이렇게 상세하게 전제 사실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이를 간략히 하도록 명했다. 이와 별개로, 검찰은 김 부원장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민주당사 압수수색을 잇따라 강행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압수수색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도 형사사법의 중요한 원칙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 소환, 구속영장 청구, 기소 등 수사기관의 ‘활약상’이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한다. 이런 활약은 대개 야당과 전 정부 인사들, 정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을 향하고 있다. 가뜩이나 정권과 검찰이 한몸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검찰은 더욱 형사사법 원칙에 충실하게 정도를 걸어야 한다. 요란하게 압수수색하고, 공소장을 현란하게 꾸미고, 실효성 없는 소환조사를 되풀이하는 모습은 절제된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쇼처럼 비칠 뿐이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9일(현지시각) 스위스 취리히미술관을 찾아 미술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런 인상을 받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이라는, 수사기관이 가장 중시해야 할 원칙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 리트머스 시험지는 바로 ‘살아 있는 권력’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다. 대통령실은 30일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을 고발하면서 “아무 의혹이나 제기한 후 주가조작이 아닌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 대표든 김 여사든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입증할 책임은 당연히 없다. 수사기관이 할 일이다. 다만 두 사안에 다른 점이 있다. 이 대표 사건은 검찰이 총력전으로 수사 중인 반면, 김 여사 사건은 숱한 의혹에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야말로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원칙대로 김 여사를 수사한다면 그때 김 여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든 서면진술서로 갈음하든 누구도 시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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