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가짜 과학이나 근거 없는 믿음이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퍼지는 모습을 보면 겁이 난다. 비타민은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는데도, 비타민 시장은 계속 커진다. 사람의 성격을 몇가지로 단순화해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16가지로 유형화한 엠비티아이(MBTI) 테스트는 선풍적인 인기다. 그냥 재미로 해보는데 뭐 어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재미로 정보를 퍼나르면 진실이 쓰레기 정보 속에 묻힌다. 갑상선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요오드를 먹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구글을 검색하면 그렇게 주장하는 웹 문서가 7~8페이지나 이어진 뒤에야 올바른 정보가 나온다. 툰드라나 사막지대, 아열대 등 염분을 섭취하기 어려운 지역을 빼고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요오드 결핍은 매우 드물며, 갑상선 질환과 거의 관련이 없다. 우리나라는 미역이나 김 등 해초를 즐기기 때문에 오히려 요오드 과량 섭취가 문제다. 생각 없이 퍼나른 정보가 사람 잡는 셈이다.
가장 심각한 가짜 과학 중 하나는 ‘내면아이’ 이론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상처받은 자아가 있으며, 그 때문에 성인기에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는 이 이론은 뉴에이지가 한창 인기를 끌던 1980년대 초 존 브래드쇼라는 심리학자가 들고나와 인기를 끌었다. 오죽하면 당시 학회에 심리학자 여러명이 내면아이를 돌본다며 인형을 안고 나타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 뒤 이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심리학계에서 공식적으로 폐기됐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유명 심리학자들이 쓴 책에 ‘내면아이를 주장하는 상담가는 경력과 평판에 관계없이 피하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유튜브가 등장하자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온갖 책과 매체를 장식한다. 베스트셀러도 여러권 나왔고, 그런 이론에 입각한 심리상담이 일종의 붐이 되었다.
프로이트 이후 유아기 경험은 대중심리학의 만능 무기다. 생각해보자. 어제 일도 기억하기 어려운데, 유아기의 기억이 정확할까?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빌리면, 기억이란 부정확한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쓰여진다. 어려움이 클수록 해결하려는 욕망도 간절하다. 과거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면 기억은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런 서사에 한번 엮이면 헤어나기 힘들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사람은 이야기를 믿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심리학계에서 내면아이를 경계한 이유는 자칫 착취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아이 이론은 유년기의 상처를 찾아내 대면한 뒤 충분한 애도를 거쳐 떠나보내고, 긍정적 서사를 새로 만들어 내면아이를 튼튼하게 키우면 정신적 어려움에서 해방되리라 주장한다. 그럴듯하지만, 사실 굿을 하거나 점을 보는 논리가 이와 똑같다. 그런 것을 한번 믿으면 어려울 때마다 다시 찾게 된다.
삶은 본래 어려운 것이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은 더욱 어렵다. 과거에는 한때 방황해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었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아파트 한채 정도는 장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교를 나와도 취업률이 50%가 안 된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심지어 동네 음식점에서도 로봇이 서빙하는 판이니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하고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데 새로운 질서에 대한 상상력은 나올 기미도 없다. 사실 그런 전복적 상상력이야말로 젊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현재의 문제를 과거로 치환해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는 사이비 이론이 더 걱정스럽다.
인간은 몇가지 성향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과거의 사건으로 축소될 수도 없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성격심리학자 브라이언 리틀은 제1본성인 유전, 제2본성인 환경과 함께 의미있는 일을 해내려는 개인의 의지가 성격과 삶을 결정한다고 했다. 내면아이는 없다. 지금 당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가 삶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