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021년 3월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16세기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널리 대중화시킨 근대적 정치조직을 의미하는 ‘국가’(state)라는 용어는, ‘공공의 상태’(status rei publicæ) 즉 ‘공화국의 상태’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이 ‘국가’에서 파생된 용어 중 하나가 ‘통계’(statistics)다. 통계는 근대 이후 국가의 특징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한데, 근대국가의 대다수 정책은 철저히 통계에 기반을 두고 수립·운영·평가되기 때문이다.
통계 없는 국가를 상상해보자. 당장 국가는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국민의 삶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할 일이 구성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면 필연적으로 대다수 결정은 통계에 기반을 두게 된다. 이에 더해 국가가 수행한 정책을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 역시 통계다. 이렇게 보면 ‘공공의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것 중 하나가 통계라고 할 수 있다.
통계가 ‘공화국의 상태’에 관한 중요한 지표이기에 모든 권력은 통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론 통계 하나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권력은 자신에게 불리한 통계를 잡기를 꺼리는 성향이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최고경영자인 앨릭스 코범은 <불공정한 숫자들>(2020)에서 권력이 ‘언머니’(unmoney)와 ‘언피플’(unpeople)이란 두 방식으로 불리한 통계를 외면한다고 밝힌다.
우선 ‘언머니’란 부자들이 가진 돈을 제대로 집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한 예로 (흔히 우리가 ‘조세피난처’라 부르는) ‘조세천국’(tax haven)으로 향하는 돈을 생각해보자.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이 돈은 국가의 공식 통계에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다.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찾아낸 사실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0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조세천국으로 빠져나간 돈은 총 7790억달러(약 870조원)의 규모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번째다.
한편 ‘언피플’은 주로 소외된 최하층 계층의 사람들을 집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집단에는 소수민족이나 인종,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이 있다. 국가가 이들을 통계에 잡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 우선순위 결정에서 이 집단이 밀려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공공정책 토론 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2022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통계청장에게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지침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전달했다. 이와 함께 트랜스젠더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 세계보건기구의 견해에 발맞춰, 통계청이 관리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성전환증을 정신장애로 분류하는 항목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를 받은 모든 정부 부처는 10개월 만에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특히 통계청장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조사 항목에 대한 응답 거부가 증가하고 있기에 성소수자를 통계에 포함하는 데 있어 사회적 합의를 비롯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성전환증 정신장애 분류 삭제 건과 관련해선 검토는 하겠지만 “2026년부터 적용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9차 개정 고시에 반영하는 건 어렵다”고 답했다. 성소수자들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이와 관련해 사회적 낙인처럼 정신장애로 분류하는 통계는 사실상 장기간 내버려두겠다는 모순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소외된 집단이 국가 통계에 포함된다는 것은 ‘국가의 보호’라는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첫 단계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소수자는 우리나라 국가 통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기에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에게 낙인이 되는 통계는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숫자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가 만드는 통계는 존재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