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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넘어진 이 자리에서 [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등록 2023-01-25 19:22수정 2023-01-26 02:40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

권태호ㅣ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지난 1월6일 ‘한겨레신문 간부 A씨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수억원대의 돈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전에도 한겨레 구성원 중 일부가 문제를 일으킨 바 있고, 오보로 사과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편집국 ‘핵심 간부’의, 기사 판단 실수가 아닌 ‘윤리적 문제’에서 빚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 외부 인사는 ‘개인 일탈’이라 말할 수 있더라도, 한겨레가 스스로 ‘개인 문제’라 말하긴 곤란합니다. 사태가 터지고 곧 편집국장이 사퇴하고, 대표이사와 편집인이 조기 퇴진 의사를 밝힌 것도 사안의 엄중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0일 <한겨레> 2면에 실린 ‘편집국 간부의 김만배 사건 관련 진상조사위원회’의 중간 경과보고 내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 간부는 2019년 당시 <머니투데이> 기자였던 김만배씨로부터 9억원을 받으면서 심리적 방어막을 만들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취재원이 아닌, 돈 많은 타사 동료 기자에게’, ‘잠시 빌리는 것’, ‘아무 대가 없는 것’ 등이라 애써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난 20일 ‘편집국 간부의 김만배 사건 관련 진상조사위원회’가 중간 경과보고에서 밝혔듯 ‘9억원이라는 거액을 빌리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았고, 담보도 없었고, 이자에 대해서도 뚜렷하게 약속하지 않는 등 이해하기 힘든 돈거래’입니다. 사법적 판단에 앞서 아무리 선의로 포장했더라도 응당 삼가야 했습니다. ‘대장동 사건’이 터지기 전, ‘사람들이 김만배가 누구인지 모를 때’에도 그는 주변에 ‘동료 기자에게 9억원을 빌려 집을 샀다’는 말을 하진 못했습니다. 한겨레 기자이기에 앞서 언론인이라면 누구라도 ‘상식’을 벗어나는 ‘말 못 할 사정’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여년을 지낸 한겨레에서 해고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한겨레가 넘어진 이 자리에서 어떻게 회복하느냐일 것입니다. 2003년 5월 <뉴욕 타임스>는 ‘블레어 사태’를 겪었습니다. 1998년 입사한 젊은 기자 제이슨 블레어가 2002년부터 2003년 4월까지 쓴 기사 중 37건에서 보지 않은 현장을 마치 직접 가본 것처럼 묘사하거나, 코멘트를 조작한 사실이 자체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2003년 5월11일치 1면과 4개 면에 걸쳐 사과문과 조사 결과를 실었습니다. 다음날 앨런 시걸 편집국 부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3개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평기자에서 간부까지 내부 위원 22명, 타 언론사 출신 외부 인사 3명 등 28명으로 구성됐고, 두달여 뒤인 7월28일 사태 발생 배경과 조직 문제점, 대책 등을 담은 보고서를 경영진에 내놓았습니다. 보고서 제목은 ‘왜 우리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나’였습니다.

기사 조작과 언론인 윤리 문제로 사안이 달라, 동등 비교가 가능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빌 켈러 편집인이 쓴 시걸위원회 서문을 보면, 당시 뉴욕 타임스가 얼마나 침통했는지 느껴집니다. 서문 첫 문장은 “한 사람의 부도덕한 기자가 우리 편집국을 번민의 늪에 빠뜨리고 난 이후, 우리 신문의 주요 강점 중 하나였던 자정 메커니즘도 소멸했습니다”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서문에서 “크나큰 실수에 정면 대응함으로써 회복 과정에 들어섰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습니다”, “직원들의 사기와 명성에 대한 충격은 중요한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20년 전 뉴욕 타임스 보고서를 지금 한겨레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겨레도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크나큰 실수에 정면 대응’해야 하고, ‘변화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회복 과정’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뉴욕 타임스의 해결 방식 구조에 대입하면, 현재 한겨레 내부에서 사건 실체 확인에 애쓰는 ‘진상조사위’는 시걸위원회 설립 전에 필요한 작업을 진행하는 조직이고, 근본적 해결 방안을 위해서는 시걸위원회와 같은 또 다른 조직을 구성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걸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블레어 기자가 흑인이었고, 그래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뉴스룸 분위기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고속 승진을 하게 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 아니냐는 내부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시걸위원회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것과 이번 사태가 다양성 확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도 해결 과정에서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거나, 모든 문제를 이번 사태로 귀결시키거나, 기자 윤리를 다잡되 취재 현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권력 감시와 약자 보호라는 언론의 본질, 그리고 시민들이 만들어준 한겨레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늘 자신을 다스리고, 서로를 신뢰하되 조직이 제어하고, 안팎으로 소통하는, 열린 방법론이 회복으로 향하는 길이라 봅니다. 주주·독자분들께 실망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거듭 사과드립니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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