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장용준(노엘)이 2021년 9월 무면허 운전과 경찰관 폭행 등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서울 서초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손아람 | 작가
그를 처음 보았던 건 <고등래퍼>라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였다. 풋풋한 고등학생이 아주 인상적이고 단단한 무대를 선보였다. 심사위원 한명이 “멋이 무엇인지 잘 아는 친구”라 평가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름은 장용준, 지금은 ‘노엘’이라는 예명을 쓰는 힙합 뮤지션이다.
노엘이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많이 놀랐다. 보수정치가 노동운동가와 외국인 노동자, 페미니스트를 품기까지 외연을 확장했어도 힙합 음악과의 교점을 찾기는 이른 것 같아서였다. 보수정치인 아버지에 힙합 뮤지션 아들이라니. “권력에 맞서 싸워라!”(‘fight the power’, 퍼블릭 에너미), “세금은 매일 오르고 임금은 점점 내려가. 차라리 나가서 놀자!”(‘it’s like that’, 런 디엠시)는 선동을 조상으로 삼는 음악을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의정활동보다 아들의 사건사고 기사가 더 많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들을 응원했다. 인간적 미숙함은 차츰 나아질 것이지만, 그가 낸 용기는 지울 수 없는 미덕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화도 내고 반대도 심했을 텐데 큰 결심을 했구나. 실력이 상당히 진지한 걸 보니 방송에 얼굴 한번 내밀고 싶어서 치기 부리는 건 아니겠고. 멀리까지 왔으니 아버지와 갈라서서 자기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겠네. 편한 길 놔두고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참 어렵게 살려고 하네. 쟤는 삶이 힙합이구나. 저런 건 응원해줘야지. 정치적 유전자는 물려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세상 참 재미있어!’ 내 상상은 정치적 안위를 위해 음악판에서 아들을 제거하려는 아버지와, 국회의사당 앞에 마이크를 들고 나타나서 “외쳐 f*ck the politics!(정치 엿이나 먹으라 그래) 내가 퍽도 쫄겠니!”라 랩 하는 아들의 전쟁까지 치닫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자의 유대는 끈끈했다. 정치도 힙합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게 진짜 세상이었다. 노엘은 아버지의 유산을 걷어차는 대신 힙합의 멋을 걷어차고 아버지의 유산 위에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들 문제에는 입을 굳게 닫고 정적 자녀들의 부정 입학을 소리 높여 비난하는 아버지. 자신의 전 재산보다 가격이 비싼, 실제 주인이 의심스러운 벤츠를 타고 음주운전하다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아들. 국회에서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경찰을 폭행하고 “3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몸싸움 체험”이라며 아버지의 입법 폭력을 응원하는 아들.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까지 출세한 아버지. 비서실장의 비서실장이라도 된 것처럼 “대깨문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들이다”라며 거친 정치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아들. 마침내 아들의 기행은 “전두환 시대였다면 나 건드리면 가지 바로 지하실!”이라는 가사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정말 전두환 시절이었다면 벌어졌을 일은 이렇다. 가사에 욕이 들어가는 노래를 발표하려면 절름발이가 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 일을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으니까. 불경하게 가사에 대통령 이름을 언급한 가수와 그 아버지가 가장 먼저 지하실로 끌려갔을 터다. 대머리라는 이유로 유명 코미디언이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힙합, 랩, 쇼미더머니,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대중의 관심까지 누리는 래퍼 노엘의 삶까지, 모든 것이 전두환이 아니라 전두환을 끝장낸 민주주의의 유산이다. 어떤 노랫말이든, 심지어 권력의 지하실을 농담으로 소환하는 노랫말마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남영동 취조실에서 열사들이 쓰러졌던 것이다.
“눈을 감아 들어봐, 온몸으로 느껴진 전율, 주는 대로 받아먹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해” 드렁큰 타이거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부르던 때가 문득 그립다. 그땐 몰랐지만 주는 대로 받아먹는 음악에선 정말로 아무런 전율이 느껴지질 않았다. 국회의원 아빠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음악에선 더더욱. 그건 힙합에서 허용되는 게임의 법칙이 아니라 제도권 권력의 법칙이다. 그 권력은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 그룹 엔더블유에이(N.W.A)가 정규음악판 장외인 길거리에서 인기몰이 하던 태동기부터 힙합을 지하실에 처박으려 시도하지 않았나? 그 모진 수모를 버틴 힙합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권력을 아버지로 삼고 세상의 나머지 부분이 지하실로 끌려가는 길을 터준다. 미국 래퍼 나스(NAS)의 말에 동의한다. “힙합은 죽었다(hiphop is d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