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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배, 1000배 보복은 ‘팃포탯’이 아니다 [유레카]

등록 2023-01-16 14:28수정 2023-01-17 02:38

‘팃포탯’(tit for tat)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용어가 아니어서인지 이런저런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대표적이다.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의 원조인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의 대원칙이다. 실제로 이 법전에는 “평민이 귀족의 눈을 멀게 했으면 제 눈을 멀게 한다”(196조), “평민이 귀족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제 뼈를 부러뜨린다”(197조) 같은 조문이 여럿 나온다.

그러나 팃포탯의 뉘앙스와 더 잘 어울리는 건 마오쩌둥이 남긴 이 말이다.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오로지 죄와 벌에 관한 것이지만, 마오의 저 말은 상대방을 대하는 원칙이나 태도·방식과 관련돼 있다. 평화도 가능하고, 전쟁도 가능하다. 다만 평화도 전쟁도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 하기에 매여 있다.

팃포탯은 게임이론의 한 전략이다. 앞 게임에서 상대방이 했던 행동을 이번 게임에서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협조적이었으면 협조하고, 비협조적이었으면 협조하지 않는다. 가장 성공적인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게임이 충분히 길어야 한다.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가 대표적이다. 둘 다 침묵하면 서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데 먼저 욕심을 내다 둘 다 가장 나쁜 결과를 얻는 행동 경향(‘죄수의 딜레마’)이, 게임이 반복될수록 협동으로 수렴해가는 것이다. 생물의 상호이타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배경으로도 쓰인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떤가. 북이 무인기를 침투시키자 우리도 북쪽으로 무인기를 날려 보냈다. 팃포탯이다. 그러나 “2~3배로 북에 올려보내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는 징후적이었다.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 윤 대통령은 발언 수위를 갈수록 높여가더니, 마침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자체 핵 보유를 언급했다.

팃포탯은 상대방이 못됐다고 긴장 수위를 마냥 높여가는 게 결코 윗길이 아님을 일러준다. 나아가, 남은 게임이 한두번뿐이라는 걸 알면 상대방이 배신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도 참조할 만하다. 압도적인 힘에 의한 조급한 평화 추구는 그만큼 상대방이 게임의 조기 종료를 예상해 배신을 선택할 확률을 높이지 않을까.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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