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유지민 | 학교 밖 청소년·전 거꾸로캠퍼스 학생
지난해 3월 건강 문제로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미인가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4분기로 이루어진 교육과정 중 세번의 학기를 지내고 지난 11월에 그만뒀다. 이후 약 두달 동안 난생처음 ‘무소속'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소속 청소년으로 사는 것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다.
‘요즘 뭐 하면서 지내니?'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흔한 안부 인사이다. 자퇴 뒤 이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타인들에게 나를 설명할 수식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 앞 ‘○○학교 재학생', 간단하게 끝나던 자기소개가, 자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부터 자퇴 뒤 근황까지 긴 설명이 되었다. 칼럼을 쓰거나 외부 행사에 가서도 내 이름 앞에 붙일 수식어가 없어 매번 곤란하다.
지난달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기 위해 증명사진 스튜디오에 갔다. 사진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질문을 받았다. ‘방학했어요?' 대충 그렇다고 얼버무리며 황급히 대화 주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학교 밖 청소년인 나에게 방학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처음 본 상대가 학교 안 청소년이라고 생각해 던진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마다 난처하다. 자퇴했다고 말하자니 따라붙을 질문들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학교에 다니는 척 대답하는 건 나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처지가 된다.
소속이 없어지면서 당연하게도 학교가 주는 인간관계는 누릴 수 없게 됐다. 평소 가족과 과외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 날마다 최소 10명 이상과 대화하던 학교 다닐 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말수가 줄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워졌다. 처음 만난 친구들과 늘 학업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는데, 이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지만 아직 외로움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반면 대안학교를 그만둔 뒤 두달 동안 일생일대 가장 주체적인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전까진 시간표, 과제, 수행평가, 팀 프로젝트 등에 휘둘리기 바빴다. 타인이 만든 일정에 맞춰 사는 데 유독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스스로 세운 계획대로 보내는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다. 나와의 약속을 모두 지켰을 때 성취감은 이전 공동체 생활에서의 성취감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변했다. 더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시켜 억지로, 고통스럽게 공부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공부, 필요한 일을 스스로 찾아 한다. 이제는 벼락치기 공부도 하지 않는다. 매일 적은 양을 꾸준히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학교에서 강조하던 ‘자기주도학습'을 학교를 벗어나고 비로소 실천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업 중단 학생 수는 2020년 3만2027명에서 2021년 4만2755명으로 1만728명(33.5%) 증가했다. 특히 고등학교 학업 중단 비율이 한 해 사이 39%포인트 높아져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학업을 중단하는 까닭은 다양하다. 나의 경우 혼자 공부하는 걸 택했지만, 자퇴 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청소년도 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도 주위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퇴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학교 밖 청소년의 수가 늘어나고 자퇴 계기도 각양각색인데 사회적 인식은 평면적이라고 느낀다. 청소년이 당연히 학생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을 거는 환경에서 자퇴생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10대 청소년을 당연히 ‘학생’으로 부르는 게 때로는 그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
최근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수기,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자퇴 뒤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나도 이런 또래들을 보고 정보와 용기를 얻었다. 이 흐름이 널리 퍼져 더 많은 ‘무소속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되길. 또 이런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관련 정책에도 반영되길. 학교 안,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 모두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