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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핵 공유”에 집착하는 군사적 망상

등록 2023-01-05 18:29수정 2023-01-05 18:36

지난해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해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재작년 9월 대선판에 뛰어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미국에 전술핵 배치와 핵 공유를 요구하겠다”는 안보공약을 발표했다. 발표 다음날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윤 후보를 겨냥해 “해당 공약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미국의 정책에 대한 무지가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깔아뭉갰다.

이런 수모를 당한 기억이 희미해졌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기획-공동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가 공동으로 미국의 핵무기 정보를 공유하고, 핵 사용 계획을 작성하며, 핵 사용 훈련까지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윤 대통령은 “미국도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자신의 핵무기 소유권과 사용권, 통제권 일부를 한국과 공유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후보 시절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선 미국과 핵 사용을 공동으로 기획하려면 한미 핵 공동 기획그룹(NPG)이 구성돼야 한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과 전술핵을 공유하면서 운용하고 있는 이 모델을 아시아의 동맹국에도 적용하자는 주장은 예전에도 일부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핵 기획그룹에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를 참여시켜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하자는 소수 학자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핵 비확산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하는 미국 정부가 실제로 그런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이제껏 누구도 들어본 바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을 하면 “무지하다”는 비아냥만 돌아올 뿐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유독 한국에 핵 공유라는 특혜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상식적이지 않다. “핵 없는 세상”을 주장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이라면 더욱 이를 거부할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은 백악관에서 기자의 “한국과 핵 공동연습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노”라고 답했다. 뒤이어 나온 백악관 해명 역시 한국과 핵을 공유한다거나 공동 핵 정책을 기획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윤 대통령 주장대로 한미가 핵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핵무기 투발 모의연습을 하려면 한미 핵 연합부대가 창설돼야 한다. 핵에 대한 접근과 사용은 일반 전투부대가 아니라 핵 접근권을 인가받은 특별한 전문요원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국군이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에 관여하든지, 아니면 한국군 전투기, 잠수함, 미사일에 핵 사용 코드를 부여해 미국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어야 한다. 유사시 한반도에 핵탄두를 투입할 수 있는 특수 저장시설과 인가된 요원이 한국 또는 일본이나 괌에 배치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그런 미국의 핵 저장시설이 단 한곳도 없다. 한국군이 미국의 핵전쟁 수행부대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거나 핵 사용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미국으로부터 그런 허가를 받은 전문요원이 없고 미국은 세계 어떤 동맹국에도 이런 특혜를 베푼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한국군 주요 공격무기들은 아예 핵탄두 장착이 불가능하도록 미국으로부터 촘촘한 기술 통제를 받고 있다. 미국이 핵 공유를 하는 나토의 유럽 국가들도 사후 평가에만 참여할 뿐 실제로 미국 핵무기 작전통제권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미국과 핵 사용을 전제로 한 모의연습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작전에 관한 사후 평가나 통보에 불과한 수준이지 핵 사용 기획과 결정에 참여하는 공동의 핵 정책 수행체계는 아니다.

미국이 보유한 전술 핵탄두 200여기는 유럽 방어를 위해 오래전에 구축한 항공기 투하용 중력 핵폭탄이다. 방공망이 조밀한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사용하려면 폭격기로 핵을 투하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함정에서 발사하는 핵 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용 전술 핵미사일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실전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전술핵 현대화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실전에 사용될 가능성이 큰 전술핵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전술핵을 마치 우리 것인 양 주장하는 그 무지와 망상이 놀라울 뿐이다. 대통령이라면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안보 정책의 품격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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